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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미국의 공립학교로 전학 간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워싱턴, 버지니아, 메릴랜드, 텍사스 주에서 74명이 설문에 응했다.
'한국 학교와 미국 학교 중 어느 곳에 다니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74명 중 70명이 미국 학교를 꼽았다. 한국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대답은 3명이었고, 1명은 반반이라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미국 학교를 선호하는 이유로 "선생님이 친절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준다" "편애하지 않는다" "토론을 많이 한다" "다양한 특별활동" 등 소프트웨어적인 요인을 주로 들었다. 학교 시설의 차이(3명), 학급당 학생 수(0명), '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1명) 등을 이유로 제시한 학생은 많지 않았다.
한미 간의 경제력과 국부(國富) 차이에서 빚어지는 하드웨어적인 요인보다는 매일 학생들이 체감하는 교사들의 태도와 수업 방식, 학교 분위기가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의 만족도를 결정짓는 요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메릴랜드 주 켄무어 중학교의 허선(미국명 로버트 허) 교사는 "미국 학교를 선호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결과를 보니 놀랍다"며 "언어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적응이 어려울 텐데도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교를 선호하는 현상에 대해 한국 교육계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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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생님들, 성의껏 질문 받고 친절"=설문에 응한 학생 중에는 조기 유학생이 일부 포함됐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해외 근무로 미국에 온 학생들이다. 부모의 근무기간이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처지의 학생들이 많았다.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는 제외했다.
미국 학교를 선호한다고 대답한 학생들에게 '미국 학교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주관식으로 묻자 학생들은 '교사들의 태도'를 가장 많이 꼽았다.
"어떤 질문이든 성의껏 받아준다" "학생의 인격을 존중해준다" "칭찬을 많이 해준다" "편애하지 않는다" 등의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촌지를 받지 않는다" "때리거나 욕하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도 각각 5명과 11명이었다.
버지니아 주 제임스 메디슨고교 9학년(한국의 중3) 최호준 군은 "미국 선생님들은 질문을 무시하지 않고 어떤 질문이든 성의 있게 대답해준다"며 "다양한 특별활동과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신뢰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태도에 이어 학생들이 미국 학교의 장점으로 많이 꼽은 것은 수업 방식이었다.
토론 위주의 수업 진행과 다양한 실험 실습이 좋다는 대답이 각각 20건이 넘었다.
중학 2년을 마치고 2년 전 미국에 온 이진(여) 양은 "자기 적성에 맞는 과목들을 선택해 들을 수 있고 선생님들과 토론하고 실험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며 "미국에선 학생들이 스스로 실험을 해보고 공식을 찾아내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학교 문화의 차이를 이유로 든 학생도 많았다. "한국에선 아이들끼리 밀치거나 심지어 치고받고 싸워도 선생님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대답이 5건 이상이었다.
음악과 스포츠 등 다양한 클럽활동을 장점으로 꼽은 학생도 13명에 달했다.
단국대 사범대 부속고 1학년을 다니다 전학 온 한 남학생은 "한국에서는 공부만 하면서 친구들과 PC방에 가는 게 고작이었다. 미국에선 운동, 합창 등 여러 클럽활동을 하면서 나 자신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선생님과 미국 선생님의 차이는? (3명 이상 유사한 대답 나온 경우) | |
미국 | 한국 |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친다 | 주입식이다 |
수업 진행에 학생 참여 요구한다 | 선생님 혼자 수업 주도한다 |
진도를 천천히 | 빨리빨리 |
주제를 주고 자유롭게 창작하게 한다 | 예문을 들어 설명을 해 준다 |
칭찬을 많이 해 주지만 정을 주진 않는다 | 무섭고 칭찬 많이 안 하지만 정이 많은 선생님들이 있다 |
선생님과 친구 같은 분위기 | 약간 거리가 있고 엄격하다 |
개인 사생활 관여 안 한다 | 집에까지 찾아와서 관심 보여 준다 |
대화하려는 자세 | 가르치려는 자세 |
▽한국 학교의 이런 점이 좋아요=한국 학교가 더 좋다고 대답한 3명 중 2명은 "친구들과 깊은 정이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명(10학년)은 "교생 선생님이 있어서"라는 다소 색다른 이유를 들었다.
미국 학교를 선호한 학생들에게 "그래도 미국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인종 차별을 느꼈다"고 대답한 학생이 2명이었고 "소수민이라는 느낌이 싫다"는 대답이 4명이었다. "수업 시간에 통제가 안 된다" "과목마다 옮겨 다녀 학생들이 따로 따로 논다" 등의 대답도 나왔다.
"고교에서 AP 과목을 많이 신청하면 공부 강도가 매우 세서 1주일에 사흘 정도는 잠을 3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없다는 불평도 했다. 총기 사고 위험성을 꼽은 학생도 1명 있었다. 수학여행, 소풍 등 한국만큼 추억거리가 없다는 대답, 수학 과목의 학습 수준이 너무 낮다는 대답도 1건씩 있었다.
'한국 학교에서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체벌이나 험한 말 △싸우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주입식 암기만을 요구한다 △능력이 있어도 배려하지 않는다 △공부 위주로만 생각한다 △과목 수가 너무 많고 불필요한 교육 내용이 많다 △선생님이 수업 준비를 별로 안 해 온다 △경쟁이 심하다 등의 대답이 나왔다.
한국 선생님과 미국 선생님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미국 학교의 어떤 점이 더 좋으냐'는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들과 거의 비슷했다. "미국 선생님이 학생 개개인에게 신경을 더 많이 써준다" "점수가 낮을 때 한국은 꾸중을 하지만 미국은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은 친구 같은 분위기인데 한국은 엄격하고 무섭다" 등 미국 교사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 선생님들 가운데 인간적으로 정이 더 깊은 분이 계셨다"는 대답도 5건 나왔다. 서울 서초구에서 온 한 고교생은 "한국에선 선생님이 학생들 집까지 찾아가서 고민을 함께 나눠준다"고 말했다.
▽"한국 학교가 이렇게 바뀐다면 돌아가겠어요"=이 질문에 대답을 한 학생이 많지는 않았다. "과목 수를 줄이고 선생님들이 수업 준비를 더 많이 해주신다면"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교육과정이 바뀐다면" "선생님들이 촌지를 받지 않으면" "숙제를 줄여주면" 등의 대답이 나왔다. "도망가겠어요"(매리옷 리지 고교 장 모양)라는 대답도 있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美 교실에선
“수업중 껌 씹지마” 아니라
“왜 안좋은가” 토론후 결론
지난해 9월 초 미국 메릴랜드 주 켄무어 중학교 8학년(한국의 중2) 교실.
교사와 학생들이 새 학기에 지켜야 할 '교실 협약'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특히 '수업시간 중 껌을 씹는 것을 허용할까'를 놓고 논쟁이 길어졌다. 투표 결과 '우리 교실에선 껌을 씹지 말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수업 중 껌을 씹으면 행동점수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수업 중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수업 중 화장실에 갈 때는 허가증을 받는다 등 10개 조항의 협약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협약을 집에 가져가 학부모의 서명을 받아 교사와 교무실에 제출했다.
이 학교 허선(미국명 로버트 허) 교사는 "교사와 학생들이 무슨 일이든 토론해 결정하고 학생들의 질문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며 "학생이 어려운 질문을 하면 여러 교사가 모여 답변을 준비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주의 한 중학교 교사는 "선생님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고 전제한 뒤 "부담 없는 내용의 얘기를 하며 스스럼없이 부를 때는 이름(퍼스트네임)을 부르지만 중학교부터는 교사들이 공식적으로 학생에게 의견이나 요구를 할 때 '미스터(Mr.)' 등의 존칭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한 교사는 "수업 중 학생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해 각종 트리트(treat·선물)를 준비해 간다"며 "이를 위해 1년에 개인 돈 1000달러 이상을 쓴다"고 말했다.
이길식 텍사스대 교수는 "교사들이 학생에게 일일이 관심을 기울여 주고 참여를 유도하는 교육 문화가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여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어릴 때부터 발표력을 중시하고 프로젝트를 직접 생각해서 진행하게 하며 책을 많이 읽히는 교육 방식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일룡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은 "교사들이 권위적이기 보다는 학생들을 친구처럼 대해 주고 매사에 참여를 유도하며 칭찬을 많이 해 주는 것은 미국 교실에 뿌리 내린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