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조리는... 섣달 그믐날 자정 이후부터 정월 초하룻날 아침 사이에 사서 걸어 놓는 조리.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조리 장수들은 복조리를 사라고 외치면서 돌아다닌다. 각 가정에서는 밖에 나가 1년 동안 쓸 만큼의 조리를 사는데 어느 집은 식구 수대로 사서 가족의 머리 맡에 놓아 두기도 한다. 식구 수가 적은 집은 한쌍을 사서 'ㅅ'자 형으로 묶은 뒤 방문이 마주 보이는 방벽이나 부엌의 물동이가 놓인 벽 위 기둥에 걸어둔다.
섣달 그믐날 밤에 사지 못한 집은 설날 아침에 사는데 이것은 일찍 살수록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몇 개를 한데 묶어 방 귀퉁이나 부엌에 매달아 두었다가 쓰는데 손잡이에 예쁜 색실을 매어 모양을 내기도 하며 그 안에 돈이나 엿 등을 넣어두어 일년 동안의 원화소복을 기구하는 정성의 징표로 삼기도 한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므로 그 해의 복을 조리와 같이 긁어 모아 건진다는 뜻에서 이 풍속이 생긴 듯하며 복조리를 문 위나 벽에 걸어 벽사진경하는 풍속은 조리의 무수한 눈이 신체의 눈과 같이 광명을 상징하는 데서 온 것으로 추측된다.
▶ 아낙네는 복조리, 남정네는 복갈퀴 섣달 그믐날. 발을 가늘게 짠 복조리를 이웃집 마당에 던져두고 세배 겸 조리값을 받으러 다녔다.
조리값은 깎지도, 무를 수도 없다. 복을 깎고, 복을 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용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람들은 설날 새벽 복조리를 기둥에 걸어놓고 무사안녕을 빌었다. 복조리는 정월 보름까지 사고 팔았다.
복조리는 쌀을 일듯 복을 일어주고 재앙을 걸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고 팔 았다. "해동죽지"에는 「예로부터 습속에 섣달 그믐날의 해가 저물면 복조리 파는 소리가 성안에 가득하다. 집집마다 사들여서 붉은 실로 매어 벽에 걸어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농경문화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복조리가 나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복조리는 아낙들이 복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남정네들은 복갈퀴를 사고 팔았다. 새해들어 처음 사는 갈퀴가 바로 복갈퀴. 경상도에서는 정월 첫장이 열리는 날 복갈퀴를 샀고, 전라도에서는 정월이나 2월중에 복갈퀴를 샀다고 한다.
요즘은 복조리를 만드는 마을이 거의 없다. 돌을 골라내야 할 때는 생활필수품이었지만 이제 조리 자체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리산 동당마을과 함께 백아산 자락의 송단마을 정도가 겨우 맥을 잇고 있다. 동당마을에서는 현재 36가구 전세대가 복조리를 만들어 판다.
복주머니도 비슷한 개념으로 복을 담을수 있게 정월달에 선물을 하는 물건중 하나였다한다. 또 같은 주머니를 만들어 숯을 담아 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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