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작사가는 윤치호 확인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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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작사가는 윤치호 확인
‘동해물과 백두산…’ 애국가 가사를 독립신문 사장과 대성학교 교장을 지낸 윤치호(尹致昊·1865~1946)가 지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가 미국에서 발견됐다. 기독교 서지연구가 신인수(서울 회현교회 장로)씨는 ‘윤치호 쟉(작)가 애국가’를 수록한 ‘셰(세)계명쟉(작)가곡집- 무궁화’ 책자를 미국 LA에서 입수해 16일 공개했다. 1931년 LA 종우서관이 펴낸 노래집으로, 편집·발행인이 LA 리들리(Reedley)지역에서 교육자로도 활약한 한석원 목사다.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scotch folk song’(스코틀랜드 민요)이라 적은 올드랭사인 곡조에 ‘동해물과 백두산…’부터 ‘이 긔(기)상과 이 맘으로…’까지 1~4절 가사와 함께 노래집 앞부분에 담겼다.
서지학자 겸 애국가연구가 김연갑씨는 “이번에 발굴한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일제의 한국 강점기 국내외서 출판된 인쇄물 가운데 윤치호를 애국가 작사자로 명기한 최초의 자료”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도산 안창호가 이끈 신민회가 주관한 ‘신한민보’ 1910년 9월 21일자에 애국가 가사와 일치하는 ‘국민가’가 ‘윤치호 작’이란 이름으로 실렸지만, 제목이 ‘애국가’가 아니어서 논란이 돼 왔다”면서 “이번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곡명과 가사, 작사자가 정확히 일치해 애국가연구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현재 부르는 애국가는 안익태가 1935년 11월 작곡,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채택해 오늘에 이르고있다.
신인수씨는 “한인 미주이민100주년을 맞아 LA ‘대한인국민회’ 등을 방문해 한국 자료를 수집하던 중 재미작가 이자경씨로부터 ‘무궁화’ 노래집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노래집은 ‘윤치호 작사 애국가’ 외에도 안창호 쟉(작)가 ‘한반도가’, 김인식쟉(작)가 ‘대한혼’, 작사자를 밝히지 않은 ‘국긔(기)가’ 등, 1919~1931년 한국인 사이에 불린 애국독립창가와 찬송가 103곡을 담고 있다.
그동안 애국가 작사자를 놓고 윤치호설 안창호설 김인식설 최병헌설 민영환설 윤치호·최병헌합작설 등이 제기됐으나, 크게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대립해 있다. 윤치호설의 내용은 ‘애국가는 윤치호가 1907년 작사, 그가 설립한 한영서원 교재로 편찬한 ‘찬미가’를 통해 널리 보급했다’는 것. 안창호설을 지지하는 쪽은 애국가를 대성학교가 앞장서 보급했고, 주역은 안창호”라며 맞서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55년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심의했으나 ‘찬성 11, 반대 2’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해 결정을 유보, 애국가는 작사자 미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연갑씨는 “일제 때 애국가를 자유롭게 불렀고, 안창호의 활동 근거지였던 LA에서 윤치호 작사를 명확히 밝힌 애국가가 출판된 것은 그 작사자가 윤치호임을 분명히 보여준다”면서 “2007년 윤치호 애국가 작사 100주년을 앞두고 이제는 미상으로 버려둔 작사자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운기자 proarte@chosun.com )
▲ 윤치호 | |
‘동해물과 백두산…’ 애국가 가사를 독립신문 사장과 대성학교 교장을 지낸 윤치호(尹致昊·1865~1946)가 지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가 미국에서 발견됐다. 기독교 서지연구가 신인수(서울 회현교회 장로)씨는 ‘윤치호 쟉(작)가 애국가’를 수록한 ‘셰(세)계명쟉(작)가곡집- 무궁화’ 책자를 미국 LA에서 입수해 16일 공개했다. 1931년 LA 종우서관이 펴낸 노래집으로, 편집·발행인이 LA 리들리(Reedley)지역에서 교육자로도 활약한 한석원 목사다.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scotch folk song’(스코틀랜드 민요)이라 적은 올드랭사인 곡조에 ‘동해물과 백두산…’부터 ‘이 긔(기)상과 이 맘으로…’까지 1~4절 가사와 함께 노래집 앞부분에 담겼다.
서지학자 겸 애국가연구가 김연갑씨는 “이번에 발굴한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일제의 한국 강점기 국내외서 출판된 인쇄물 가운데 윤치호를 애국가 작사자로 명기한 최초의 자료”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도산 안창호가 이끈 신민회가 주관한 ‘신한민보’ 1910년 9월 21일자에 애국가 가사와 일치하는 ‘국민가’가 ‘윤치호 작’이란 이름으로 실렸지만, 제목이 ‘애국가’가 아니어서 논란이 돼 왔다”면서 “이번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곡명과 가사, 작사자가 정확히 일치해 애국가연구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현재 부르는 애국가는 안익태가 1935년 11월 작곡,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채택해 오늘에 이르고있다.
신인수씨는 “한인 미주이민100주년을 맞아 LA ‘대한인국민회’ 등을 방문해 한국 자료를 수집하던 중 재미작가 이자경씨로부터 ‘무궁화’ 노래집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노래집은 ‘윤치호 작사 애국가’ 외에도 안창호 쟉(작)가 ‘한반도가’, 김인식쟉(작)가 ‘대한혼’, 작사자를 밝히지 않은 ‘국긔(기)가’ 등, 1919~1931년 한국인 사이에 불린 애국독립창가와 찬송가 103곡을 담고 있다.
그동안 애국가 작사자를 놓고 윤치호설 안창호설 김인식설 최병헌설 민영환설 윤치호·최병헌합작설 등이 제기됐으나, 크게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대립해 있다. 윤치호설의 내용은 ‘애국가는 윤치호가 1907년 작사, 그가 설립한 한영서원 교재로 편찬한 ‘찬미가’를 통해 널리 보급했다’는 것. 안창호설을 지지하는 쪽은 애국가를 대성학교가 앞장서 보급했고, 주역은 안창호”라며 맞서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55년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심의했으나 ‘찬성 11, 반대 2’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해 결정을 유보, 애국가는 작사자 미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연갑씨는 “일제 때 애국가를 자유롭게 불렀고, 안창호의 활동 근거지였던 LA에서 윤치호 작사를 명확히 밝힌 애국가가 출판된 것은 그 작사자가 윤치호임을 분명히 보여준다”면서 “2007년 윤치호 애국가 작사 100주년을 앞두고 이제는 미상으로 버려둔 작사자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운기자 proart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