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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권력이 움직인다]<9>대안연대회의
《‘대안연대회의’(운영위원장 박진도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대안적 세계화’를 모색하는 경제학자 중심의 지식인 네트워크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또는 ‘케인스식 수정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사회의 구체적 현실에서 ‘대안적 세계화’의 답을 찾고 있다. 이들은 기업이 투기적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재벌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재벌 총수에게 경영부실의 책임을 묻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신 재벌개혁론자’들이기도 하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지향
국민-주택은행의 합병과 대우자동차 매각 협상이 한창이던 2001년 4월. 100여명의 사회과학자들과 해당기업 노조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회의실에 모여 ‘대안연대회의’란 새로운 정책대안 그룹의 발족식을 가졌다.
발족 당시의 명칭은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정책 연대회의’. 말 그대로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하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맞서 대안이 될 정책을 모색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연대조직이었다. 이들은 발족식에서 특히 은행간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 단기이익을 노린 투기성 외국자본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넘기는 기업매각 등의 정책에 강력히 반대했다.
대안연대회의의 이찬근 정책기획단장(인천대 교수·국제금융)은 “무리하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하며 대형화와 단기이익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은행권은 안전하게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기업들에 돈 빌려주기를 기피하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시중에 여유자금이 있어도 가계대출에 치중하는 바람에 자금이 기업에 투자되지 않음으로써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것이다.
대안연대회의는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마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정책포럼, 금융노조 지도자 교육 등을 통해 자본과 기업의 ‘국적성’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공론화해 갔다.
조원희 사무국장(국민대 교수·경제제도)은 “대안연대회의에는 독일 사민당이나 스웨덴 사민당식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일정 정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은 포스트 케인스주의자로 분류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사상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사회통합을 통해 성장기반을 육성하며 △금융자본보다는 산업자본 위주로 경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
● 신재벌개혁론
대안연대회의는 올해 초부터 재벌문제를 이슈로 들고 나왔다. 영국계 투자펀드인 소버린이 ㈜SK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독자생존 노력을 방해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진 것은 그간의 재벌개혁이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안연대회의는 정부의 특혜를 받으며 성장한 재벌은 사유재산인 동시에 국민적 자산이므로 재벌이 경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국민경제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신재벌개혁론’을 편다. 경영에 실패했을 경우 총수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 강력히 응징하되 △재벌간 교환 출자 △은행의 기업 지분 보유 △국민연금의 기업 지분 참여 등의 방식으로 국내에서 기업의 지배권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간 무방비 상태로 추진돼 온 자본 자유화로 인해 국민경제가 초국적 금융자본에 포위됐다고 보고 있다. 이찬근 집행위원장은 “초국적 금융자본에 포위돼 국민경제가 운신의 폭을 잃음으로써 지속적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졌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특히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나 재벌개혁 요구에도 가해진다. 초국적 자본에 포위돼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주주 이익을 우선으로 하다 보면 결국 투기성 외국자본에 국내 기업이 다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측은 공식 대응을 삼가고 있다. 다만,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이끈 장하성 교수(고려대·경영학)가 기관지인 ‘월간 참여연대’ 5월호에서 “국내 진보진영 내의 일부 시대착오적 극좌 민족주의자들이 해외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의 지배권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반개혁적 보수 기득권 세력과 연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조원희-김균교수 한식구서 '비판적 협력관계'로 ▼
조원희 교수(대안연대회의 사무국장)와 김균 교수(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소장·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 겸임). 1990년대 초반부터 참여연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두 사람은 그러나 2001년 대안연대회의가 발족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다른 길’은 경제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참여연대와 대안연대회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999년 참여연대 내부에는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급속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이 가져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참여연대 내에 새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했다.
조희연(성공회대·사회학) 김동춘 교수(〃) 등이 새 조직 결성에 적극 나섰고 당시 참여사회연구소 운영위원이었던 조원희 교수가 조직 창설의 실무를 맡았으며 참여연대 내에서 박진도(충남대·경제학) 김균 교수(고려대·경제학), 외부에서 이찬근(인천대·경제학) 유철규(성공회대·경제학) 이병천(강원대·경제학)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경제학)와 전국금융노조의 김기준(정치위원장) 하익준씨(정책2국 실장) 등 지식인과 사회운동가 약 100명이 참여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들은 2000년 파업사태 때 정책대안 마련과정에서 대안연대회의와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조원희 교수를 비롯해 새 조직을 만들던 사람들 내부에서 “소액주주운동 등 참여연대가 펼치는 경제개혁운동이 결국 국제금융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기자는 신자유주의에 편승하는 것”이라며 “참여연대 내부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조직을 꾸릴 수는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참여연대 내부에서 잉태된 새 조직은 대안연대회의로 분리, 독립하게 된다.
이후 대안연대회의는 참여연대의 경제개혁 활동을 가장 격렬하고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세력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러나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안연대회의는 2001년 분리 후에도 1년 동안 참여연대로부터 사무인력과 재정 일부를 지원받았다. 참여연대로서는 자처해서 반대세력을 인큐베이팅한 셈.
조원희 교수는 “참여연대는 개발독재의 유산을 털어내기 위해 자유주의의 세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거센 상황에서 자유주의의 도입은 곧 신자유주의에 휩쓸리는 결과를 낳고 만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균 교수는 “금융자본보다 실물경제가 중요하다거나 경영권 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등의 지향점에서는 두 단체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현 단계에선 역할이 다른 두 단체가 다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두 교수는 학문적으로 서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어 ‘비판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