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순 교통사고의 미스터리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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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교통사고의 미스터리 | [2003년 11월 4일 | 북한] | ||
안녕하십니까. 통한문제연구소(NKchosun.com) 강철환기자입니다.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인 김용순이 6월 16일 교통사고를 당해 장기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10월 26일 사망했습니다. 김정일의 핵심 측근이자 오랫동안 대남사업을 주도해온 그의 죽음은 북한내부는 물론 해외에서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온 듯싶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그의 교통사고 원인이 음주운전과 과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자동차 천국」인 대한민국에서야 교통사고가 다반사이지만 자동차 많지 않는 북한에서 교통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더욱이 고위층이 교통사고를 당해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면 일반 독자들은 선뜻 납득하지 못하리라 여겨집니다. 평양시 인민보안성 제 7지구대(보통강ㆍ 락낭 ㆍ평천구역 일대)에서 오랫동안 교통담당 보안원(경찰초소장)으로 일해온 탈북자 오영남(40. 중위)씨는 이런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그럴듯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씨에 따르면 북한에는 일반 도시에는 평소 차량운행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평양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나마 도로가 비교적 잘 정비돼 있어 교통사고가 발생할 이유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또 북한 당ㆍ정 고위간부들의 차량을 모는 운전기사들은 중앙당 운수과에 소속되어 있는 최고의 베테랑들로 나이도 대부분 40세 이상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그들이 운전미숙이나 부주의로 사고를 낼 가능성은 0(제로)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서는 심심찮게 교통사고가 발생한다고 오씨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반인들보다는 고위층에서 주로 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고위 간부들이 주기적으로 열리는 김정일의 주말파티나 비밀모임에 호출을 받고 직접 운전해 현장으로 가다가 일으키는 사고입니다. 김정일이 주관하는 파티나 모임은 비밀을 요하기 때문에 사전 예고 없이 이루어지며 운전기사도 대동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추상같은 김정일의 호출을 받은 간부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약속장소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때문에 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사정이 여의치 못한 간부들은 무리를 해서 운전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과속 또는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막강한 권력 때문에 발생하는 무절제한 운전습관이 그들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최측근들에게는 차량번호판이 김정일의 생일인 216 **** 순으로 나가는데 앞 번호가 216인 벤츠승용차는 그 어떤 경우에도 세울 수 없습니다. 교통지휘부는 이런 특별 벤츠승용차가 나타나면 모든 신호시스템을 비상체제로 바꾸어 다른 모든 차량의 운행을 정지시킨데 고위간부들의 차량을 우선 통과시킨다고 합니다. 또한 김정일은 측근들에게 전용 승용차 외에도 벤츠스포츠카 등을 선물로 주어 주말파티나 지방특각(별장) 나들이에 동행하는데 이때에도 운전기사를 동행하지 않고 추리닝이나 평상복 차림으로 직접 운전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럴 땐 으레 음주운전이 있게 마련이고 차량이 거의 없는 도로에서 과속질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김정일과 그 측근의 밴츠행렬은 1㎞이상 길게 늘어선다고 합니다. 간부들의 차량에 치인 민간인은 비밀보장 때문에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간부자신은 절대로 교통사고 때문에 책임을 지거나 보상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즈음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과거 김정일의 최측근이자 군부 실세였던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1980년대 말 김정일의 주말파티에 참석한 뒤 직접 운전대를 잡고 귀가하던 중 새벽에 인민무력부앞 청사 버드나무를 들이박고 목숨을 잃을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벤츠 승용차는 『버드나무에 붙어버렸다』고 할 정도 찌그러졌으니 그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사망했거나 곧 사망할 것으로 짐작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김정일에게 급보로 전해졌고, 김정일은 특별지시를 내려 오진우를 독일로 실어가 치료토록 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당시 김정일 후계체제 대해 다소 냉소적이던 그가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김정일 지지 쪽으로 돌아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 초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김치구ㆍ이화영 부부장이 김정일과 흥남 서호초대소로 주말여행을 다녀오던 중 평양시내에서 과속 운전으로 버스를 들이받고 즉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에도 김정일의 차량이 앞장서고 간부들의 차량이 뒤를 따랐는데 김치구 일행이 탄 차량이 뒤쳐지자 속도를 맞추기 위해 과속하다 결국 대형사고를 낸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이길송 당시 철도부 정치국장(현재 중앙검찰소장)도 김정일로부터 받은 스포츠카를 몰고 과속 운행하다가 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다고 오씨는 밝혔습니다. 김정일의 경호원 이였던 이영국씨에 따르면 가끔 갖 배치된 신참 교통보안원들이 고위간부들의 차량인줄 모르고 단속을 위해 차를 세웠다가 혼쭐이 나는 경우도 있으며 김정일 경호차량이 사람을 치고 곧바로 도주하자 그를 추격하던 보안원이 김정일청사 근처까지 추격했다가 거꾸로 총격을 받은 해프닝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당사자는 사유가 명확하지 않은 보상과 훈장을 받고 전사 처리되고 그것으로 사고는 덮어지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라고 합니다. 고위층 얘기는 아닙니다만 1990년 초 어느 부유한 북송교포가 새벽에 만취상태에서 평양-남포간 고속도로를 질주하다가 야간훈련에 동원된 인민군 부대를 덮쳐 순식간에 십여명이 사망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었습니다. 당시 그의 장모는 일본인이었고 장모의 부친이 일본에서 40억 엔이라는 막대한 부(富)를 딸에게 기부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돈의 대부분은 북한 노동당으로 흘러들어 가족들에게는 2000만 엔 정도를 주었는데 그 정도면 북한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거액인 것입니다. 「군님의 군대」라고 하는 인민군, 그것도 생떼같은 목숨 십여명을 일순에 빼앗고 일부는 평생불구를 만들었지만 그는 3개월의 감방생활을 마치고 멀쩡하게 출소했습니다. 죽은 군인들에게는 컬러TV를 한대씩 보상했는데 대부분의 피해자 부모들은 죽은 사람은 이제 살아날 수도 없고 그래도 평생 살 수 없는 컬러TV라도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고 합니다. 인민보안성과 군부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상급기관의 지시를 받고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사형수도 살린다는 부패공화국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북한 내부보다 외부세계에 더 잘 알려진 김정일과 그 측근들은 무법천지에 살고 있으면서 정작 백성들에게는 노동개미처럼 일만하고 무조건 충성하도록 강요하는 사회가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주민들이 김정일과 그 측근의 부패타락한 생활을 조금만 알아도 저렇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용순 비서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것은 개인적으로 안 된 일이지만 곪을 대로 곪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북한상황은 바로 북한을 이끌고 가는 김정일과 그 측근들의 호화방탕한 생활과 초법적인 특권이 만들어낸 결과인 것입니다. 견제되지 않는 절대 권력이 어느새 반세기를 넘었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진리를 이젠 김정일과 그 측근들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