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 풍경] 콜센터가 중국가는 까닭 - <font color=blue>양봉진</font> 교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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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 풍경] 콜센터가 중국가는 까닭 |
한국경제는 중국 땅에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는가. 국민은행이 콜센터를 중국으로 이전하려 한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청년.노인실업이 늘고 있는 판국에 은행 콜센터까지 중국으로 간다면 "우린 무얼 먹고 사느냐"는 탄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입방아 좋아하는 일부에서는 근 5천명에 달한다는 국민은행 콜센터 직원들의 집단행동 가능성을 겨냥한 사전경고성 엄포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과연 그런가. 싱가포르 유력지 스트레이츠 타임스(Straits Times) 편집국을 들여다 보자. 이 신문은 싱가포르와 호주에 두 개의 편집국을 운영하고 있다. 호주와 싱가포르 사이에는 3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인들은 퇴근 후 집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스트레이츠 타임스 편집국 인터넷으로 들어가 싱가포르 현지 기자들이 써 올린 기사를 이모저모 평가하고, 교정하며, 편집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싱가포르의 국민소득은 호주보다 높다. 그러니 경비절감을 해야 하는 싱가포르 기업으로서는 싱가포르 현지인을 쓰는 것보다 천마일 이상 떨어진 호주인을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반대로 호주에서는 '야간 아르바이트'로 짭짤한 과외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인들도 영어를 공영어로 쓴다. 하지만 싱가포르인들의 혀와 구개(口蓋)구조는 영어에 맞춰 훈련된 호주 원어민(原語民)들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싱가포르 신문으로서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호주인 편집담당'이야 말로 더없이 좋은 '안성맞춤 인력'인 셈이다. 언론의 생명은 일차적으로는 좋은 미문(美文)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IT회사들의 '시공(時空)초월'은 싱가포르 신문사보다 서너 발 더 나아가 있다. 대부분의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인력 아웃소싱은 지구 반대편까지 뻗쳐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을 넘나든다. 손색없는 개발능력에 영어 구사력까지 갖추고 있지만 미국의 15분의 1 수준인 지구 반대쪽 사람들의 인건비는 날로 줄어드는 미국 기업들의 호주머니를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과 동종업종을 영위하고 있는 시티 등 글로벌 은행들의 원가절감 노력도 영어권 개도국 인력을 콜 센터로 불러들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민은행의 '중국 콜센터'가 향후 중국시장 공략을 위한 국민은행 나름대로의 '장기 비전'의 일환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향후 2~3년 앞을 내다보고 검토하고 있다는 중국 콜센터는 결국 '없었던 계획'으로 끝날 공산도 없지는 않다. 타당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무한대로 변하고 있고, 정주영 체육관 준공을 계기로 천명 이상의 남한인이 평양을 방문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는 '평양 콜센터'가 '중국 선양 콜센터'보다 더 나은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 임금은 중국보다도 쌀 뿐 아니라 '중국 쪽 한국어'보다 '북한 쪽 한국어'가 더 고급(?)일 수도 있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제조업의 '탈(脫)한국 러시'는 이미 진부한 단어다. 노무현 정부 출현과 더불어 강성일변도로 변해버린 노조, 강남의 아파트 투기, 무책임한 정부정책에 가위 눌린 한국 경제는 "서비스업 너마저…"를 외쳐야 하는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은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줄여야 할 공무원 숫자를 오히려 늘리고 있을 정도로 시대착오적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이런 기조를 유지하는 한, '중국 콜센터' 현상은 제2, 제3의 서비스업으로 전^^처럼 확대돼 갈 것이 뻔하다. 기업은 생물이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땅에 자기가 묻힐지도 모를 무덤을 파느라 여념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양봉진 <bjyang@bjglobal.co.kr> 2003.10.08 17:37 입력 / 2003.10.08 17:40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