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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Maggie | 김의형( richard ) | 2003-10-09 | 2 |
아래의 글은 용량 문제로 시끄러울 때 내렸던 대여섯 개의 글중 하나 입니다.
지난 주말 수학여행 때 제 방에서 다리가 부러진 조각상을 보고 사연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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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번째였을까, 나는 그녀가 전해준 CD에 담긴 "Maggie" 라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다락 속 서랍에서 무엇을 찾으려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상자 속에서 튀어나온 빛바랜 흑백 사진 하나. 그 정지된 시간에 담겨진 기억을 더듬으며 보내버린 어느 한나절처럼 추위가 멈춰선 잿빛 하늘의 겨울날 하루를 종일토록 그렇게 그 노래만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이제 내게도 중년의 시간이 온 것일까? 그 노래와 함께 회상에 젖어야 할 그 무엇이 없건만 Maggie는 잡히지 않는 과거의 그 무엇을 들추어내고, 코스모스와 마른 억새 잎이 바람에 흔들리던 옛 기억 속 가을의 들판으로 나를 내어 모는 것이었다. 내게는 그 바람 부는 들판에 함께 선 어느 누구도 없다. 꽉 막힌 기억의 실마리를 풀어내야 할 아무런 흔적도 없건만 나는 이렇게 무엇인가를 자꾸 기억해내려 애쓰는 사람처럼 중단 없이 어두운 실내를 채우는 그 노래의 선율에 잠긴다.
맨햇튼의 23층 스튜디오에 살던 시절, 내 아파트에는 빛이 하루 종일 한 움큼밖에는 들지 않았다. 대낮에도 실내의 불을 밝히고 살아야 했던 아파트여서 어떤 식물도 자라지 않았다. 늘 열심히 물을 주건만 시들시들 죽어가는 식물들을 번번이 햇빛 찬란한 곳에 사는 나보다 여유 있는 친구에게 주어버리면서도 나는 식물을 곁에 두고 싶어 했었다. 어떤 종류의 동물도 키울 수 없는 아파트여서 그 공간에 나 이외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식물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꾸 죽어 나가는 식물을 보기가 안타까워 조화를 사다 놓아보기도 했었다. 허지만 그건 나 자신에 대한 기만이었다.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생명체였다.
어느 일요일 8th Avenue와 20th Street가 만나는 코너에서 주말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벼룩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며 눈에 띈 것은 플라스틱 상자를 포개놓고 웅크리고 앉아 작은 어항에 담긴 두 마리의 붕어를 팔려고 앉아있는 10대 초반의 소녀였다. 눈이 마주치자 "Isn't it pretty?" Eastern European 억양이 섞인 투박한 영어를 수줍게 건네며 작은 미소를 짓는 소녀의 두 갈래로 땋은 머리채가 가냘픈 몸매의 때 묻지 않은 한국 여느 시골 소녀를 연상시켰다. "How much you want?" "Twenty" "O. K. I'll have it." "Thank you." 그게 다였다. 그 소녀와 나눌 수 있었던 대화는. 소녀의 수줍어하는 성격과 서투른 영어로 우리의 대화는 이어질 수가 없었다.
어둡기만 한 내 작은 아파트로 그렇게 시집온 두 마리의 붕어는 텅 빈 아파트 문을 열고, 불을 켜고 들어설 때마다 나를 반기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옷을 갈아입은 후, 그날 아침에 받아두었던 수돗물로 물갈이를 해주면서 나는 그 붕어 두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나직하게 늘어놓은 CD 음악이 다 끝나도록 아무런 생각 없이 쉴 새 없이 꾸물거리는 그 붕어들만을 바라보면서 보내는 날들이 많아져 갔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으로 코트 옷깃을 올리고 걸어야 했던 어느 날, 눈앞을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퍼붓는 진눈깨비로 미끄러운 길을 뒤뚱이며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다 마침내 들고 있던 가방을 놓치는 바람에 길에 널 부러져 얼룩진 서류들을 챙겨 다시 가방에 넣고 걸으며 가슴속이 헛헛해지도록 메마른 웃음을 웃고 돌아온 퇴근길이었다. 아파트 키를 돌려 문을 연 후 스위치를 올려 불을 밝히고 돌아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가짜 벽난로 위에 걸려있던 큰 그림이었다. 바닥에 깔려있는 크림색 카펫에 물 얼룩이 크게 번져있고, 그 위로 벽에 걸렸던 액자가 조각난 유리와 함께 널 부러져 있었다. 워싱턴에 살던 시절 어렵사리 손에 넣었던 테라코타로 만든 드가의 Spanish dancer 조각도 바닥 저 멀리 다리가 부러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어항이 놓여있던 테이블도 넘어져 있고, 붕어 두 마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벽에 망치질했던 못이 그림 액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통에 액자가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밑에 놓여있던 조각과 작은 어항을 내리쳤던 모양이었다. 붕어 두 마리는 부엌 바닥 저 멀리에 내팽개쳐져 이미 더 이상 꿈틀대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엉망이 된 아파트 바닥을 정리하고 전날 마시다 넣어둔 냉장고 속 와인을 꺼내어 마시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화분에 약간의 물을 부어주고 물 적신 수건으로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줄 식물도 살아내지 못하고 번번이 죽어 나가고, 자그마한 어항 속에서 쉴 새 없이 꿈틀대며 질긴 생명을 가르치던 붕어도 차가운 부엌 바닥에 숨을 멈추고 뒹굴어진 아파트에서 나 혼자만이 숨을 쉬고 꿈틀대는 유일한 생물이었다.
귓전을 맴돌며 댕그렁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 쳐다 본 천장은 하늘이 아니었다. 희뿌연 인식의 늪 너머로 보이는 것은 추녀로 뻗어나간 기와를 받치고 있는 서까래 통나무 줄기였고,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었다. 가회동 할아버지 댁 사랑채 툇마루에서 놀다 깜박 들었던 낮잠에서 깨어날 때면 들리던 추녀 밑 풍경소리, 바람결에 실려 오던 사랑채 소나무 솔 내음이 곁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꿈이었다.
언제 어떻게 쓰러져 잠에 들었는지 텅 빈 와인 병은 바닥에 뒹굴고, 마시던 술이 남겨진 와인 잔은 소파 곁에 세워져 있었다. 그날 밤이 시작이었다. 귓전을 울리는 추녀 밑 풍경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왜 Maggie를 들으며 나는 갑자기 이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시간에 젖어 들어야 하는 것일까. 사람이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상에 빠져드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하더니, 나 역시 아무와도 나눌 수 없던 과거 시간에 조차 이렇게 빠져들어야 하는 것일까. Maggie는 칙칙대는 고장 난 축음기에 얹힌 LP처럼 쉴 새 없이 귓전을 울리고, 나는 망각의 늪에 영원히 묻어두고 싶은 시간을 자꾸 거슬러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