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font color=blue>김우룡</font>/비판 없는 ‘官報’ 원하나 -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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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2 18:38
[시론]김우룡/비판 없는 ‘官報’ 원하나
논란 많던 인터넷 국정신문이 운영을 시작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신문’이다. 청와대와 각 부처 고위 공직자들은 정책홍보협의회를 구성, 4일부터 매주 회의를 열기로 했다. 정부정책에 대한 대국민 홍보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기존 언론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로 인해 언론의 신뢰는 크게 상처받고 있다. 사실 한국 언론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 “정권-언론 야합” 명예훼손 소지 ▼
노무현 대통령이 동아·조선 등 4개 신문을 상대로 2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가 했더니 국정홍보처의 차장은 외국신문을 통해서 우리 언론인을 집단적으로 매도, ‘무관의 제왕’을 부끄럽게 했다.
8월 22일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홍보처 차장의 기고문은 우리 언론과 기자들을 비하했다. “정부 부처는 영향력 있는 기자들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며 정기적으로 돈봉투를 건네고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당사자는 번역이 잘못됐다고 상투적인 발명(發明)을 했다.
‘술 밥’ 타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기자들과 소주 한 잔 먹고 기사 잘 써주면 고맙고, 내 이름 한 번 내주면 더 고마운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3월 청와대 직원 워크숍에서는 “여러분 중 일부가 기자들과 술먹고 헛소리하고 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를 내보내 정말 배신감을 느꼈다”고 질책했다.
어디 그뿐인가. 대통령은 며칠 전 전국 시군구의회 의장단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그 특유의 언론관을 다시 피력했다. “언론,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권과 언론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일이 있나. 소위 야합의 관계였다. 그걸 고치자는 것이다.”
정권과 언론이 야합의 관계였다는 발언은 언론인 전체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과거 일부 방송은 독재 권력의 버팀목 노릇을 했고, 일부 신문은 정권 홍보의 시녀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정부와 ‘코드’가 맞는 언론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 미디어야말로 야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왜 동아와 조선처럼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온 언론까지 묶어서 폄하하는가.
미국의 언론학자 프레드 시버트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역할 설정 유형을 4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언론에 대한 규제 역할이다. 모든 정부는 공익 차원에서 언론에 대해 제한된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이긴 하지만 반윤리적, 반사회적이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는 언론을 촉성(促成)하는 역할도 한다. 언론자유가 신장될 수 있도록 방송 기자재의 수입을 면세로 해준다든가 신문 잡지의 우편료를 깎아주는 일이 그 예다.
셋째,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정보의 유통을 왜곡하고 탄압하거나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치들이 여기 속한다.
넷째, 어떤 정부는 언론을 직접 경영한다. 미디어는 정부의 하부구조가 되고 공무원이 기자 역할을 한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거나 미디어를 직접 소유 경영하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나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과연 노무현 정부는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 부패하기 쉬워 ▼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는 민주정치의 성공 요건이다. 지금처럼 권력의 작용에 의해 언론이 분열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되면 정부의 권위와 공신력도 함께 추락한다. 언론은 정치와 행정에 대한 정보제공처인데 ‘믿을 수 없는 언론’이 전하는 메시지를 어느 국민이 따르겠는가.
언론 개혁의 우선 대상은 무엇일까. 편향성이 넘치는 ‘정권방송’, 퇴폐 드라마로 ‘불륜공화국’을 만들고 있는 공영방송이 아니겠는가. 일방통행식 관보(官報)가 지배하는 사회, 비판과 반대가 없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그리고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쉽게 부패하는 법이다. 언론의 소중함이 여기 있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시론]김우룡/비판 없는 ‘官報’ 원하나
기존 언론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로 인해 언론의 신뢰는 크게 상처받고 있다. 사실 한국 언론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 “정권-언론 야합” 명예훼손 소지 ▼
노무현 대통령이 동아·조선 등 4개 신문을 상대로 2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가 했더니 국정홍보처의 차장은 외국신문을 통해서 우리 언론인을 집단적으로 매도, ‘무관의 제왕’을 부끄럽게 했다.
8월 22일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홍보처 차장의 기고문은 우리 언론과 기자들을 비하했다. “정부 부처는 영향력 있는 기자들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며 정기적으로 돈봉투를 건네고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당사자는 번역이 잘못됐다고 상투적인 발명(發明)을 했다.
‘술 밥’ 타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기자들과 소주 한 잔 먹고 기사 잘 써주면 고맙고, 내 이름 한 번 내주면 더 고마운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3월 청와대 직원 워크숍에서는 “여러분 중 일부가 기자들과 술먹고 헛소리하고 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를 내보내 정말 배신감을 느꼈다”고 질책했다.
어디 그뿐인가. 대통령은 며칠 전 전국 시군구의회 의장단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그 특유의 언론관을 다시 피력했다. “언론,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권과 언론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일이 있나. 소위 야합의 관계였다. 그걸 고치자는 것이다.”
정권과 언론이 야합의 관계였다는 발언은 언론인 전체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과거 일부 방송은 독재 권력의 버팀목 노릇을 했고, 일부 신문은 정권 홍보의 시녀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정부와 ‘코드’가 맞는 언론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 미디어야말로 야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왜 동아와 조선처럼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온 언론까지 묶어서 폄하하는가.
미국의 언론학자 프레드 시버트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역할 설정 유형을 4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언론에 대한 규제 역할이다. 모든 정부는 공익 차원에서 언론에 대해 제한된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이긴 하지만 반윤리적, 반사회적이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는 언론을 촉성(促成)하는 역할도 한다. 언론자유가 신장될 수 있도록 방송 기자재의 수입을 면세로 해준다든가 신문 잡지의 우편료를 깎아주는 일이 그 예다.
셋째,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정보의 유통을 왜곡하고 탄압하거나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치들이 여기 속한다.
넷째, 어떤 정부는 언론을 직접 경영한다. 미디어는 정부의 하부구조가 되고 공무원이 기자 역할을 한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거나 미디어를 직접 소유 경영하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나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과연 노무현 정부는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 부패하기 쉬워 ▼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는 민주정치의 성공 요건이다. 지금처럼 권력의 작용에 의해 언론이 분열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되면 정부의 권위와 공신력도 함께 추락한다. 언론은 정치와 행정에 대한 정보제공처인데 ‘믿을 수 없는 언론’이 전하는 메시지를 어느 국민이 따르겠는가.
언론 개혁의 우선 대상은 무엇일까. 편향성이 넘치는 ‘정권방송’, 퇴폐 드라마로 ‘불륜공화국’을 만들고 있는 공영방송이 아니겠는가. 일방통행식 관보(官報)가 지배하는 사회, 비판과 반대가 없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그리고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쉽게 부패하는 법이다. 언론의 소중함이 여기 있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