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그 집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암살당 한 지 30년이 지나서도 항상 화제가 되곤 한다. 그 동안 그의 죽음이나 집안 내력 등에 관한 수많은 책이 나왔지만 시시콜콜한 가십거리에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관심을 보인다. 최근 출 간된 `케네디가의 저주-왜 미국의 퍼스트 패밀리에는 150년 동안 비 극이 끊이질 않나`라는 책도 일부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 동안에 나왔던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벌써 뉴욕타임스가 선정하는 논픽션 부문에서 3주 연속 베스 트셀러(15위까지 순위 공개)를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케네디가에 대 한 미국인들의 남다른 `애증`을 느끼게 한다. 집안의 비극이나 국민의 `애증` 정도를 감안할 때 대한민국에서 케네 디가(家)와 필적할 수 있는 집안이라면 정주영가(家)가 아닐까 한다. 정주영이 가장 사랑했다던 막내 동생 정신영의 요절, 장남 몽필의 교 통사고로 인한 죽음과 사남 몽우의 자살, 여기에다 최근 이어진 몽헌 회장의 안타까운 종말까지 한 집안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비극이 이어 져왔다. 애증으로 따져볼 때도 정주영가는 단연 압권이다. 기자의 기억으로도 정주영 씨 만큼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재벌은 없었다. 현대건설의 중동 신화, 불모지에서 쌓아올린 현대중공업의 금자탑, 포니와 엑셀 및 쏘나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긍지 현대차 등 지난 40 년 동안 우리 국민은 한국 경제 성장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정주영과 현대에 찬사를 보냈고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또 남북 경협의 실 질적 물꼬를 터 준 정주영의 혜안에 대해서도 `역시 정주영`을 연발 했다. 하지만 그만큼 비난과 욕설도 받았다. 기업인 정주영의 정치 참여는 뜻있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며 지난 대선 말미에 보여준 아들 정몽준의 선택도 어처구니없는 치기로 웃음거리가 됐다. 또 끊 임없이 회자됐던 정경유착 의혹과 `왕자의 난`으로 불렸던 자식들간 의 반목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케네디가와 정주영가의 비극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케네디가 를 연구한 학자와 언론인들이 내세우는 공통점은 `전지전능의 확신을 강요했던 집안 분위기`를 든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에서 미 국 최고의 명문가가 되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 남보다 잘할 수 있다`는 강압적인 자기 최면이 존재했던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집안의 일원들은 바 로 그런 신념의 승화를 통해 배출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강박관념, 초조감과 좌절감이 뒤섞였고 이것이 냉혹한 현실 과 부딪칠 때 비극이 발생했다.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의 암살, 살인 과 강간에 관한 끊임없는 스캔들과 집안의 내력이 된 정신질환 등…. 정주영가의 신화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정주영의 불굴의 신념 속에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이런 의식은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 전 해졌고 결국 그런 강박관념 속에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반면 무리한 선택도 숱하게 저질러졌던 것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현대 스타일`도 그 연장선 상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또 한번 시련을 맞은 현대가의 선 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우선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들에게 `코리안 드림`의 꿈을 심어주며 성장한 현대의 좌절은 곧 국민, 나아 가 국가의 좌절이다. 케네디가가 숱한 시련 속에서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것도 결국 `미 국과 미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는 점을 인정받기 때문 일 것이다. 또 한가지는 시대를 끌어가는 비전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가난의 탈피, 수출입국,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 남북 경협 등 현대는 한국사의 고비 고비마다 국가 생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던져주었다. 그 전통을 다시 이어달라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주영 신화`는 `현 대 신화`로 또 다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삼가 정몽헌 회장의 명복 을 빈다. <뉴욕 = 전병준 특파원>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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