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 가는 이유.
본문
어제도 변함없이 야구장에 갔었습니다.
어제는 세 딸과 함께 갔었습니다.
야구장에 가는 이유는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기 힘든 얼굴들의 선후배도.
그냥 가서 소주 한잔에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얼굴보는 그 재미에 갑니다.
그 이야기 속에 내 청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는 참 보기 힘든 '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딸을 모교 유격수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것은
지난 12대 13으로 지는 경기에서
그 놈이 마지막 공을 놓치고 그냥 운동장에서 퍼질러 울던
그러면서 한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 기억이 나서 였습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 이미 눈물을 잃어버린 나이에
모교 야구 경기에서
그런 아름다운 눈물들을 볼 수 있어서 입니다.
세 딸을 데리고 야구장에 갔습니다.
서른 여섯의 딸은 그 야구장의 시원한 바람이 좋아서 갔고,
여섯살 딸에게
하얀 유니폼이 아빠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네 살 딸에게는
아마 어딘가에 남을 '중앙'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네 살먹은 딸과 동대문 야구장 외야를 돌면서
20년전에 이 곳에 교련복입고 왔었던 청춘을 보았습니다.
딸들에게 아빠의 삶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갔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갔습니다.
야만돌이, 야구선수, 지축을 박차고, 나가자 중앙,
아리랑 목동, Z박수, 아톰, 계산골의 왕호랑이. . .
그리고, '흘러 흘러 흘러서'까지.
흘러흘러 흘러서 썩은 물이 아닌,
적어도 맑은 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내 젊은 청춘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그 날들이 그리워서 노래를 부르러 갑니다.
야구장에 가는 이유는,
그런 내 청춘의 경험과 똑같은 경험들을 한
우리 후배들이 있기에
그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내 청춘을 볼 수 있기에 갑니다.
야구장에 가는 이유는
8대 1 콜드게임을 보기 위해서도
8대 1로 이기는 게임을 보기위해서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싸워준 우리 후배들이
그 힘든 경기를 하고 아름다운 땀을 보여준 후
우리 앞에 섰을 때,
나의 젊은 청춘을 보여준 그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 위해서
그리고,
너와 나 함께
흘러흘러 흘러서,
열세길로서 모인 건아들이
너의 희망을 높이 높이 쌓아서,
거름 거름 덕성을 쌓아올려서,
꼭 하나가 될 것이라는 그 마음을 서로 확인하면서
고맙다는 교감을 함께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도 나는 야구장에 갑니다.
어제도 조퇴. 오늘도 조퇴.
많이, 아주 많이 우리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그 친정의 모습이기에
오늘도 야구장에 갑니다.
조금은 걱정이 있다면,
언젠가 큰 딸과 함께 갔던 야구장에서 만났던,
반갑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야구장 후배들이
점점 적어진다는 것이,
점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 적어진다는 것이
쓸쓸하고 외롭게 하지만,
간만에 흘러흘러 모였던 그 사람들끼리 또 한번 술마시며
젊은 청춘의 한 페이지를 확인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