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 김순덕칼럼] 남자로 사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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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donga.com/photo/news/200306/200306200213.jpg" align=left>허구한 날 늦는다고 잔소리하던 마누라가 며칠 일찍 귀가했더니 근심스럽게 묻는다. “당신 짤렸수?”
무슨 소리냐고 인상을 쓰자 다시 묻는 말이 “그럼 젊은 사람들한테 왕따당했어요?”
중년의 직장남성에게 들은 얘기다. 옆에서 중견간부가 말을 받았다.
“애들은 저녁 먹었다는데도 더 먹으라고 밥상 차려주면서 내가 안 먹고 왔다고 하면 귀찮은 표정이더라구.”
또 다른 남자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직도 집에서 밥상을 받는단 말이야?”
▼중년의 ‘삼손 컴플렉스’▼
‘간 큰 남편’ 시리즈가 나오던 시절이 좋았다. 그땐 그래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있으면 도적)가 현실이 된 요즘은 중년남성의 정체성과 위기에 대한 학문적 실증적 책이 쏟아져 나온다. 서점에서 ‘남자의 탄생’ ‘마흔의 의미’ ‘40, 또 다른 출발점’ ‘남자의 후반생’ 등을 집어 드는 남자들의 얼굴엔 심각함과 약간의 겸연쩍음, 위장된 무심함이 뒤섞여 있다. 꼭 비아그라를 사는 사람 같다.
중년의 특징 중 하나가 아직도 젊다고 여기는 거다. 마흔 넘은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30대 초반쯤 된다고 생각한다. 중년에 관한 책을 여럿 낸 미국의 게일 시히는 중년남성들이 실제보다 다섯살에서 열다섯살까지 어리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마흔이 넘으면서 머리가 빠지거나 가늘어지는 ‘삼손 콤플렉스’가 찾아온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남자가 과연 강한지도 의심스러워진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유산될 확률이 여자아기보다 높은 것부터 시작해 사고로 죽을 가능성은 여자의 두 배, 자살 가능성은 네 배나 된다는 게 뉴스위크지의 전언인데 말이다.
감정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세손’을 낳아 ‘법통’을 이은 아내가 무서운 것 없고 당당해지는 데 비해 남편은 눈물도 많아지고 잘 삐친다. 남자는 여성호르몬이, 여자는 남성호르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상 역시 내 맘 같지 않다. 조직은 그들더러 전사가 되라고 한다. 말로는 민주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남을 지배할 수 있는 지위와 권력을 원하는 건 남성의 생물학적 속성이기도 하다. 패자로 처진 다수는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판이다.
안타깝게도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성싶지도 않다. 세계화와 테크놀로지의 혁신, 시장경제체제로 인해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고용안정성은 구시대 유물이 됐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제프리 프랭클의 말마따나 동족상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시대가 다시 온 거다.
그래도 ‘싸나이’는 힘들다는 내색을 못한다. 속내를 털어놓는 건 남자답지 못할 뿐더러 실패를 자인하는 것도 용납될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 남자들은 자신감 빼면 시체다. ‘남자의 탄생’에서 언급됐듯, 어머니는 아들의 고추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쉬를 시킬 때부터 사내자식이란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다.
두려움 속에 엄격하게 배변 훈련받아 절차와 시스템을 중시하게 된 서구인들과 달리 우리나라 남자들이 즉각적 성취, 목표를 향한 무작정 돌진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버지세대의 권위주의에 중독된 그들은 뜻대로 안 됐을 때 더 크게 절망한다.
자업자득이긴 하다. 남성우월론에 빠져 여성의 사회참여에도, 크고 작은 가정사에도 무관심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조가 ‘조국 근대화’를 위해 남자들을 소처럼 부려왔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남자로 태어났다기보다 남자로 만들어진 그들은 죄없이 죄값을 치르는 셈이다.
▼한국남성을 해방시켜라 ▼
급변하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노후 대비도 하고 언제든지 재취업할 수 있는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말이다. 자식들 시집 장가까지 보내려면 백번 옳은 얘기다. 일 없으면 재미도 없다는 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뒤집어보면 남자는 식구들의 영원한 돈지갑이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적 음모가 엿보인다.
40년 이상 착한 아들, 성공한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안간힘을 써온 그들이다. 남자라는 죄로 ‘남’을 위해 그만큼 열심히 살았으면, 할 만큼 했다. 앞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도 죄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것에 헌신할 수 있도록 이제 남들이 배려해 줄 때도 됐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