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07 유권자 선택의 본질 <font color=blue>전병준(70회)</fo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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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2007 유권자 선택의 본질 | |||||||||
미국 현대사에서도 고비고비마다 유권자 의지가 묻어 나온다. 1976년 대선에서 미국민은 정직과 투명성을 선택했다. 74년 닉슨의 사임으로 들어선 포드 정부는 나름대로 국민에게 신뢰를 얻긴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닉슨을 사면한 포드를 용서할 수 없었고, 결국 `중앙정치의 문외한`인 조지아 땅콩농장주 카터를 선택했다. 초반 카터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제가 흔들린 데다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80년 미국 유권자는 4년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80년 대선의 화두는 미국의 자존심 회복이었다. 베트남전 패배 이후 닉슨의 사임, 카터 행정부의 무능으로 점철되면서 미국민 자존심은 손상됐고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게 됐다. 결국 당시 야당인 공화당 후보 레이건이 현직인 카터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92년 클린턴의 등장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국민 여망이 반영됐다. 마치 60년 대선에서 젊고 패기만만한 케네디를 선택했듯이 92년 유권자들은 새로운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젊은 클린턴에게 걸었다. 클린턴 재임 8년 동안 미국은 국제정치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팍스 아메리카나`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 선거는 클린턴 말년의 르윈스키 사건 등 지도자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한 유권자의 선택이었다. 결국 지난 30년간 미국민의 선택은 정직→국가적 자존심 회복→변화 욕구→도덕성 등으로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87년 6ㆍ29선언 후 본격적인 민주선거를 실시한 한국 유권자들도 나름대로 선택을 해왔다. 87년 노태우를 선택한 것은 야당의 분열이 있긴 했지만 급격한 변화에 두려움을 나타낸 유권자 의식이 반영됐다. 92년 김영삼의 집권은 지역감정이라는 고질병 속에서도 사실상 문민정부로 정권 교체를 열망했던 유권자들의 결정이었다. 97년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국가적 위기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고 진정한 여야 정권 교체의 여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2002년 노무현을 선택한 것은 `3김 정치`를 벗어나 탈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유권자 여망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들 생각은 무엇일까. 최근 표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각종 비리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데도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40%에서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과거 같으면 지지율이 요동을 쳤을 뉴스에도 유권자들이 `난 관심 없어`라고 할 정도로 외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자는 대선과 관련해 유권자 의식은 현직 대통령 재임 중 행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노무현 학습효과`가 결정적이다. 한마디로 지난 5년간 노 대통령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이 더 이상 `노무현 아류`에게는 표를 던지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나타낸 결과다. 이번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의지 표현인 것이다. 야당을 압승시킨 76년과 80년 미국 유권자 심정이 이랬으리라. 여기에다 최대 관심인 `경제 살리기`에 이명박 후보가 가장 적합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 유권자들이 웬만한 흠집에는 애써 눈을 감아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물론 염려되는 점도 있다. 마치 과거 지역감정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후보의 능력과 도덕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출신지만 보고 투표했던 악몽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최근 후보들의 각종 정책 공약이 비리 공방에 묻힌 채 유권자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긍정적인 점도 있다. 유권자들이 대통령 자격의 껍질보다는 나라를 누가 더 잘 이끌어갈 것이냐는 본질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현상을 또 다른 `유권자 혁명`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정치부 = 전병준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