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유학생의 일기(3)
본문
선,후배님들께
일전에 제 일기에 대해 격려를 해주신 여러 선배님, 후배께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생각을 나눠 본다는 취지에서 틈틈이 제 졸고를 올리고자 합니다. 혹 제 주장들이 결례가 되진 않기를 바라며..
런던에서 류영재(70) 올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나는 지난 2월 28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 기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최근 들어 UBS,HSBC등을 위시한 주요 증권 회사들은 기업을 분석할 때 있어서 그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여부를 집중적으로 분석,보고하고 있고 이것은 추세적으로 기관 투자가들에게 주요한 기업판단의 잣대로 활용되고 있다.”
즉,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런던의 유수기관 투자가들은 기업을 가치 평가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재무분석을 근간으로 하는 전통적 계량적 접근에 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리성에 기초하여 기업의 평가에 관한 적극적인 가치판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점진적 변화는 CSR펀드(이 펀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여부를 가장 중요한 투자의 기준으로 삼고 있음)의 입지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증권시장이 단순히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기제에서 탈피하여 돈을 투자하되 CSR의 관점에서 제대로 된 기업을 골라 투자하고 따라서 기업과 공동체 그리고 기업의 영업행위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stakeholder)들 모두 더불어 공존공영하자는 것이 이 펀드의 설립 목적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윤리적 접근들은 과거 수 십 년간 수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킨 것 또한 사실이다. 헨더슨(Henderson) 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기업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르짖는 경제학자들이야 말로 살벌한 경영현장을 도저히 이해 못하는 한가한 탁상 공론자들에 불과하다고 몰아 부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분야의 여러 경험적 연구 자료들은 놀랍게도 CSR옹호론자들의 입장을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 조사기관의 과거 5년간의 펀드운용성과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CSR펀드의 수익률이 여타 일반 펀드의 수익률을 10%이상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책임, 그리고 윤리성에 기초한 기업과 그렇지 아니한 기업이 영업행위의 실적에 있어서도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최근 맥킨지의 한 보고서는 극명하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백 여명의 전세계 기관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놀랍게도 70%이상의 투자가들이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와 CSR의 견지에서 우수한 기업들에게 기업을 가치 평가함에 있어서 28%이상의 프레미엄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영리 집단임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그러나 이익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이익은 얻고자 할 때 놓치고, 놓고자 할 때 얻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기업의 영업행위가 사회의 공동선과 부합될 때 그 구성원으로부터 호응을 얻어 소비와 기업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한 생명 보험사는 이러한 면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이 회사는 어느 경쟁사도 꺼리는 AIDS환자들을 위한 상품을 개발했다. 손해 볼 것이 뻔한 사업이었지만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환자가 편안히 임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취지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외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 회사는 대단한 홍보효과를 얻어 괄목할 만한 도약을 이룩해 냈다.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나는 재벌로 대표되는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된다. 과거 달러 벌이에 한 몫을 했었고, 틈틈이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의연금 등을 출연했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것마저도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이번 SK사태에서와 같은 그들의 음험한 두 얼굴 때문이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우리의 재벌들에게서 흉내가 아닌 참 사회적 책임을 기대한다는 것은 아직 요원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