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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36회 작성일 2003-03-06 00:00
늦깎이 유학생의 일기(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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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줄기차게 와이(Why)를 외치게 하는 것 어제는 중국인 교수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리처드 교수는 할아버지때부터 영국에서 거주해오고 있다고 하니 중국인 3세인 셈이다. 우리는 학교식당에서 오붓하게 식사를 마치고 학생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에 앉자 마자 리처드 교수는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 조금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연다. “영! 어때요? 적응하기가 쉽지 않지요?” “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힘드네요” “나는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집안교육은 철저히 중국식으로 받았지요. 그래서 이곳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하는 동양 사람들의 고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말이 이쯤 되고 보니 나는 큰 원군을 얻은 듯 마음이 편안해 졌다. 사실 이곳에 온 이후로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소외감에 무척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이네들의 교육 방식이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대개가 케이스를 둘러싼 토론으로 이어진다. 케이스를 받으면 곧장 스터디 그룹끼리 모여 약 30분간에 걸쳐 열띤 공방을 벌이고 그 이후엔 전체가 모여 교수와 논쟁을 벌인다. 내가 속한 스터디 그룹은 나 까지 5명이다. 그 중에 두 명은 영국인, 한 명은 네덜란드인, 또 한명은 케냐인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인 모리스는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회계사이자 뱅커인 케냐인 래시드는 영어가 모국어다. 그러니 토론이 무르익으면 나는 곧잘 맥락을 놓쳐 왕 따를 당하게 된다. “파든” “쏘리”도 한 두 번이지 서 너 번 하면 미안해서 못한다. 멍청히 앉아 있는 내 속도 모르고 이 친구들은 나보고 도대체 토론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몰아 세우기 십상이다. 수업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매일 파김치가 된다. 땅밑까지 떨어진 자존심과 끓어 오르는 분노도 어찌 다스려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집에 들어와 차분히 하루를 되돌아 보면 나의 문제는 다른 데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나를 포함한 동양 사람들은 토론에 약하다. 왜 그럴까? 이는 아마도 내적으로 응축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동양적 사유체계에서 기인하지만 그 보다는 받아온 교육과 학습방식의 차이에서 주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다시 리처드 교수의 말을 들어 보자. “영! 나는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의 동양 사람들을 가르쳐 왔어요. 대부분 열심이고 성실하지요. 그래서 주어진 과제물들은 철저히 해요. 그런데 다른 한편, 문제의식이라는 면에서 보면 서양문화권 사람들하고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 맞다. 내가 가끔 토론의 맥락을 놓치는 것은 부족한 영어실력에 더하여 이네들의 변화무쌍한 사고의 전개와 문제의식의 속도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문제든 그것을 바라보는 이네들 시각의 스펙트럼은 그 폭에 있어서 참 넓고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도 질문의 수위와 범위엔 제한이 없다. 빗나간 질문을 해도 봉창소리를 듣기는커녕 존중을 받는다. 예컨대 재무회계시간에 마케팅과 관련된 질문을 해도 결국 교수는 마케팅과 재무의 접점을 찾아 새로운 이슈로 토론의 국면을 옮겨간 후 다른 차원의 문제를 또 다시 제기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수들은 채린징(도전)하는 학생들을 좋아한다. 고상하게 말해서 도전이지, 내가 볼 때는 시비 내지는 말싸움과 대동소이 하다. 논리와 논리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사실과 사실이 칼날처럼 불꽃이 튀며 온갖 사례와 설득력이 동원되면서 새로운 시각과 합의가 도출되곤 한다. 리처드 교수는 뼈있는 몇 마디를 내게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반적으로 동양 사람들은 노벨상 수상학자나 유명대학의 저명한 석학의 말을 인용하면 챌린징하려 하질 않아요. 책을 읽어도 비판적으로 읽기 보단 순응적으로 읽지요. 이런 학습방법과 사유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이 곳 비즈니스 스쿨에서 얻을 것이란 학위증 밖에 없을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말이죠. 학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와이(Why?)와 쏘왓(So what?)을 외치게 하고 토론과 모색을 통해 함께 그 답을 찾아 나가는 거지요.” 런던에서 류영재(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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