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50회) 교우, 매경 2003.2.25.
본문
<b>[기자24시] 라종일 대사의 예언</b>
2003/02/24 18:08
신임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내정된 라종일 주영 대사는 정치 내기를 곧잘 한다.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기 위한 방법이지만 그냥 농담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내기 주제는 만만치 않다.
미국의 한국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와의 내기는 유명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말기 4ㆍ13 호헌으로 시국이 어수선하던 당시 라 교수는 국제 회의에서 커밍스를 만났다.
커밍스는 군이 다시 거리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라 교수는 커밍스에게 "국민의식이 높아지면 군의 통치비용이 커진다. 모든 사람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커밍스는 고집을 부렸고 라 교수는 내기를 제안했다.
내기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현실은 라 교수의 견해대로 됐다.
특파원들과도 라 대사는 내기를 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해 라 대사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특파원들은 당시 이슬람권의 전의로 봐서 미국은 진흙탕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 대사는 혁명군들은 승기를 잡았을 때 강한 반면 무너지기 시작하면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라 대사의 예상이 맞았다.
기자를 비롯한 특파원들은 결정적인 내기를 다시 한번 제안했다.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을 때였다. 라 대사는 공직자로서 내기에 응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한마디 힌트를 주었다.
지금 같은 정치 불신의 시기에는 자발적이고 밀착형의 후원자를 가진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기자의 머릿속에는 '노사모'가 떠올랐다 . 라 대사는 지난 6일 케임브리지대에서 남북문제를 주제로 재임 마지막 강연회를 했다.
그 자리에서 미국인 교수 한 명이 현재의 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해석했다.
라 대사는 그 견해에 대해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방법도 있다. 잘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후 라 대사는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내정돼 귀임했다.
남북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는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예언 수준이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늘 정확한 분석에 입각해 있다.
라 보좌관의 견해가 이번에도 맞을 것으로 기대한다.
<런던 = 이종현 특파원 yijong@globalnet.co.uk>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