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語로 우는 ‘기러기 아빠’ - 조선일보 200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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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사설칼럼)
[기고] 英語로 우는 ‘기러기 아빠’ ......... 閔丙哲 (2002.12.30)
자녀와 부인을 해외로 보내고 홀로 생활하는‘기러기 아빠’가 계속 늘고 있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생각으로 기러기 아빠가 된 가장들이 있다면 이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어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된 경우이다. 어느 분이 초등학교 자녀에게 영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배우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2년 전 부인과 함께 자녀를 영어권 국가로 보냈다. 더 이상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귀국을 종용했지만, 아이가 그곳에 머물고 싶어하는 바람에 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첫째, 이 경우는 처음부터 자녀를 외국에 보낼 필요가 없었다. 영어는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잘 가르칠 수 있다. 요즈음은 데이터에 저장된 원어민을 무한대로 호출이 가능한 멀티미디어환경의 인터넷 강좌, 방송강좌 및 원어민이 함께 하는 어학캠프 등을 통해 국내에서 자녀에게 얼마든지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교육을 효과적으로 시킬 수 있다. 이런 방법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영어경시대회의 입상자들 중에서 외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린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둘째, 이미 자녀를 해외로 보낸 경우라도 엄마가 구태여 함께 있을 이유는 없다. 대체로 엄마가 따라가는 이유로 교육의 질과 안전문제를 들 수 있는데, 캐나다 공립학교의 예를 들면, 주(州) 교육부에서 학교를 지정해줄 뿐 아니라 믿을 만한 홈스테이 가정을 직접 선별해주기 때문에 자녀가 가 있는 동안 부모가 한두 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엄마가 함께 사는 경우 아파트세 등 생활비가 자녀의 학비를 훨씬 웃도는 것은 물론이다.
셋째, 언어학자 놈촘스키(Noam Chomsky)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두뇌속에 언어 습득 장치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12~13세가 되면 이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언어습득 능력이 왕성한 나이의 어린이가 영어권에 들어가면 불과 6개월에서 1년만 지나면 완벽한 발음으로 영어를 듣고 말하게 되므로 자녀를 영어 때문에 해외로 보낸 경우 1년 이상 체류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영어 때문에 해외로 자녀를 보내려고 계획하는 분들은 자녀를 국내에서 영어공부를 시키고, 영어 때문에 이미 기러기 아빠가 된 분들은 하루속히 엄마가 귀국하도록 해 기러기 아빠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
언론보도 내용 중에 차마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옮기지 못할 내용들도 있다. 영어발음을 좋게 하려고 아이의 혀를 수술시키는 일, 태어날 아이에게 외국 국적을 갖게 하려고 아예 상대국으로 산모가 원정 가는 일,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엄마와 아빠가 생이별하여 아빠는 국내에서 돈벌고 엄마는 외국에서 자녀와 함께 사는 일 등이다.
외국어 교육의 목표는 학습자들에게 대화능력(communicative competence)을 길러주는 것이다. 학생들의 실용영어 구사능력을 향상시키게 하는 간단한 처방이 있다. 그것은 현재의 수능시험 문제출제 비율을 문법중심에서 생활영어중심으로 교육 정책의 축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물론 자녀를 해외로 보내는 데에는 영어교육이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국의 교육 정책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선진학문 습득을 위한 유학은 대학생 정도부터가 적절하지 너무 어린 나이에 장기간 외국으로 내보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국인의 뿌리를 갖춘 국제인’이지, 자녀의 생각이 외국인으로 바뀐 ‘국적만 한국인인 외국인’을 만드는 일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閔丙哲/중앙대 겸임교수·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