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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기억
68회 허 훈
나는 내가 대단히 용감하다고 생각해 본 일도 없고
용감해야 할 어떤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젊었을때 만약 내가 생명의 위험과 부딪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를 알고 싶었다.
내가 자신의 용기를 시험해 볼 수도 있었을 단 한번의 기회는
DMZ근처에 근무했던 군의관 시절이었다.
군의관 시절, 내가 서 있었던 벽이, 바로 내가 그곳을
떠나는 순간에, 오발된 포탄에 맞아 날라가 버렸을 때였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용기는 커녕 내 심리상태를
알수도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이나 영화속에서
교통사고나 총에 맞아서 죽는 바로 직전에 회상되는 장면을
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거나, 아내나 애인을 그리워하고,
자식을 걱정하면서 죽는 것으로 묘사 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작가나 영화감독이 자신이 직접 그런 사고의 순간을 경험하지 않고,
막연히 그럴것으로 추측하여 묘사한 장면일 뿐이다.
내 경혐이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 의하면, 사고를 당하여
죽기 바로 전의 심리상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교통사고로 몸이 3-4m 날아가는 그 순간
마지막으로 떠오른 기억은 내가 우리집 강아지를 발로 차는 장면이었다.
어떤사람은 가슴에 총을 맞고 기절하는 순간, 마지막으로 떠오른 기억은
초등학교때 선생님한테 매 맞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똥사다 휴지가 없어서 난감해 하던 생각이 번뜩
떠 올랐다고 한다.
그렇다!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급박한 사고를 당하여 죽거나, 기절하는 순간 떠오르는 기억은
우리 가슴속에 고히 간직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라,
젼혀 생각지도 않았던 기억들이 번뜩번뜩 연상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