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애와 나랑은/이장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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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애와 나랑은
이 장희</b>
그애와 나랑은 비밀이 있었네
그애와 나랑은 남몰래 만났네
그애와 나랑은 서로가 좋았네
그애와 나랑은 사랑을 했다네 예예예
하지만 지금은 그애는 없다네
그애를 만나면 한없이 즐거웠네
그애가 웃으면 덩달아 웃었네
그애가 슬프면 둘이서 울었네
그애와 나랑은 사랑을 했다네 예예예
하지만 지금은 그애는 없다네
그애의 이름은 말할 수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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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요계의 코털중 하나인 이 장희...
그를 알게 된 첫 노래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은 이는 아마 없을 겁니다.
평이한 말로 가사를 만들고 일상생활의 일들을 노래로 만든 사람...
영화 별들의 고향의 음악은 그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느 날 안보이더니... 미국에 가서 라디오 코리아를 한다고요...
<b>이장희에 대한 기억</b>
현재 LA 라디오 코리아의 사장으로 있는 가수 이장희는
오토바이와 콧수염으로 많이 기억되고 있지만,
70년대 중반 그는 우리 나라 최고의 인기가수였다.
그 역시 쎄시봉의 골수 멤버였는데,
하루는 이장희가 헐레벌떡 명동성당 성모상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똘강 이백천 선생과 용호 형을 비롯하여 몇몇이 성당으로 나갔다.
이장희는 어느 소녀의 어깨를 부여안고 지금 이 소녀와 약혼식을
거행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소녀가 누구냐고 묻지도 못했다.
그렇게 이장희는 매사에 당당했다. 이장희는 우리에게 무릎을 꿇을 것을 권했고
우리는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장희는 그 소녀와 의미심장한 키스를 교환하더니 약혼 예식의 종료를
우리한테 통보했다.
우리는 '쎄시봉'으로 돌아왔고, 그 후에 우리는 이장희가 그날 성모상 앞에서
키스한 소녀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끝내 못 들었다.
한번은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윤여정, 최영희 패거리들과 함께
시인 김남조 선생 댁에 저녁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장희가 우리 모두를 자지러지게 만든 것이었다.
이장희는 김남조 선생과 마주앉은 자리에서 선생의 장시 한편을 좔좔좔 읊어 내려갔다.
우리 모두는 말을 잊었다.
서울고 출신으로 연세대에 다녔던 이장희는 바로 그런 친구였다.
이장희의 노래들 중에서 '그건너', '한잔의 추억', '자정이 훨씬 넘었네',
'편지',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같은 folk rock계열의 노래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까지 한국 모던 포크 낭만주의 물결의 정수라고
여겨지는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나 '친구여'의 아름다운 가사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영남의 '삽다리를 아시나요' 중에서 발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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