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글을 중앙인과 함께 읽었으면 합니다.
여행의 먼길을 준비하고 오늘 이 장정을 출발을 함에 있어서 혹시나 중앙인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에 간절하게 다가오네요^
관산회선배님이 이동우<63회> 선베님이 글이 관산회게시판에 글이 올려지지만
중앙사랑의 실천을 마음속에 두고 여행을 하시는 동우형님의 글이 전중앙인에게 특히 재중국인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글을 퍼옵니다.
계속해서 퍼서 연재를 해드리겠습니다.
동우형님의 안전여행,성공여행을 기원합니다.
혹시 중국에 계시는 중앙인들은 동우선배님께 연락을 해보시조^^
중국 종단 자동차여행을 준비하면서...
중국 최북단의 가장 큰 도시라는 하얼빈에서 중국인들이 과거 지구의 끝이라고 여겼다는 천애해각(天涯海角 tian ya hai jiao) 이 있는 해남도의 삼아(三亚 san ya)까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며 여행을 해 보려니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만만치가 않다. 자동차 여행이니만큼 자동차는 필수인데 중국에 와서 사고를 당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니 자동차를 살 형편도 되지 않아 마음에만 두고 여행을 하고픈 충동을 못이겨 그간은 국내선 비행기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또 중국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려다 보니 시간만 있다면 가장 싸고 안전한 교통수단이 기차인 것을 알게 되어 기차를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늘 언젠가 자동차를 타고 개혁개방 이후 많이 발전했다고 하는 중국의 여러 도시를 중국에 온 이상 한 번 자동차로 달려 보고 싶은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을 가서 살고 있을 때 자동차로 미대륙횡단 여행을 하였다는 분으로 부터 여행담을 듣게 되었고 많은 미국인들이 자동차로 미대륙 횡단여행을 한다고 해서 아주 흥미로웠는데 그 때 나도 한 번 마음껏 넓은 대륙을 자동차로 달려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으나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어찌나 바쁜 생활을 해야 했는지 그럴 기회를 갖게 되지 못하고 미국을 떠나 온 것이 항상 아쉬워서 이기도 하다.
내가 해 보고 싶은 여행을 마음껏 해 보려 해도 부양할 가족이 생기고, 더욱 자식을 셋이나 두게 되니 더욱 장기간의 여행일 수 밖에 없는 미국 대륙횡단여행은 자연 어린 아이들에게도 무리한 여행이 될 것 같아 해 보지 못하였지만 가족이 함께 한국에 들어와 있게 된 1983년 여름방학에는 미국 대륙은 자동차로 횡단을 못하더라도 거리로 따져 보면 훨씬 짧은 시간안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의 조국 한국에서라도 자동차로 여행해 보자고 하여 서울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최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까지 당시 새로 막 출시가 된 포니 엑셀 현대자동차를 몰고 갓 태어나 지저귀를 차고 우유를 먹던 막내 아들을 포함하여, 환갑을 막 지내신 어머님을 모시고 전 가족이 자동차 여행을 한 것이다.
그때 서울에서 출발하여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달려 중간 중간에 명승지라는 곳을 들리며 전라도 목포에 도착했고 목포에서 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바다를 건너 가 제주도의 곳곳을 자동차로 구경하고 다시 페리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도 만나보고 올라오는 경로를 동해쪽의 도로를 이용하여 백암온천과 설악산도 구경하고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이렇게 전국을 한 바퀴 자동차로 달려 본 거리는 약 1,500킬로였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내가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한국의 형편없는 도로 사정과 페리라고 하는 것이 낡은 화물선이어서 뉴욕에서 자동차와 사람을 싣고 맨해튼과 스테이튼 아이랜드 섬을 오가는 페리를 즐겨 타 본 적이 있기에 여행을 준비하며 한국도 경제성장이 되었다더니 이런 것이 미국처럼 있구나 하며 기대를 했던 것이 이름은 그럴 듯하게 고속페리라 붙여 놓고 비싼 값을 받고 있었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어 큰 실망을 하게 되기도 하였다. 또 현대의 포니차는 새차인데도 왜 그렇게 고장이 나며 새차라 새 타이어인데도 펑크가 몇 번 나서 자동차를 정비해야 하는 어려움을 격게 되었다. 더욱이 전 가족이 여행 도중에 식당에서 사 먹은 음식 때문에 설사를 너무 하게 되어 병원 신세도 져야 해서 이래 저래 고생을 하게 되니 자동차 여행하면 좋다고 주장하니 함께 동행해준 가족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이런 경험은 당시 한국의 경제 수준에 자동차 여행은 전혀 맞지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월이 흘러 2000년이 되었을 때 한국의 서울은 자동차로 넘치고 모두가 마이카 시대를 맞이하게 되어가는데, 나는 공룡전 세계순회전시를 하고자 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였고, 이 때 보르네오섬의 작은 석유왕국 브루나이란 나라에서 출발하여 보르네오섬의 사라왁주 쿠칭에 이르는 약 1,500킬로의 정글을 관통하는 2차선 도로를 말레이시아 직원과 함께 짚차의 대명사인 영국산 랜드로바로 왕복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다. 이때 튼튼하리라고 여겨졌던 랜드로바가 어떤 구간은 아주 썩 좋지 않은 상태로 내팽개쳐진 도로를 달리게 되니 자동차의 엔진과 바퀴를 연결하게 하는 부분이 돌출되어 나오면서 전복이 되어 목숨마저 잃을 뻔했던 적도 있다.
4년 전 말레이시아의 7개 도시에서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마치고 중국의 37개 도시에서 공룡전시회를 개최키로 중국통으로 중국의 모든 방언을 다 구사할 줄 아는 말레이시아에서는 꽤 유명한 지필화가(指笔画家)인 중국화교와 계약을 하고 첫 번째 전시회 개최지인 중국의 최북단 하얼빈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전시를 하기도 전에 사스란 복병을 만나 전시물품을 전시장에 그대로 두고 철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철수를 했고, 이 때 전시물품 전체를 잃어 먹기도 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찾게 되었을 때 이번에는 나쁜 마음을 가진 하얼빈한인회 회장이라는 감투를 썼으나 실제는 일개 건달에 불과한 자에게 겨우 찾은 전시물품 전체를 강탈당하는 일생 최대의 위기를 당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이 안좋은 상태인데 이런 일을 연이어 당하게 되니 건강은 더욱 나빠지게 되어 생을 포기하여야 할 지경에 처해 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위기도 다행스럽게 나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도움을 주며 오히려 위기에서 구해준 좋은 중국인을 만나 다 극복해 나가게 된다.
도착하기 전 나름대로 중국에 대해 알아보았고, 그때 막연하게 중국이 큰 나라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크기가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자료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를 러시아, 그 다음이 캐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중국이라고 하고 미국을 네 번째라고 해 놓고 있지만, 미국의 자료에는 세 번째가 미국이고 그 다음이 중국이어서 정확할 수 있는 나라의 면적에 대한 통계가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긴 했지만 대략 중국과 미국은 크기에서 비슷하기에 이렇게 다른 통계가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미국에서 살아 보며 미국이 대국이라는 것을 인정해온 나는 중국도 과연 대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했다는 1978년으로부터 30년이 되어 가고, 그 30년이 지나가게 되니 중국은 정말 세계인 모두가 놀랄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였다. 하지만 과거 중국은 그 많은 사람과 큰 땅을 갖고 있었음에도 일본제국주의 침략 시에 봤듯이 자신보다 훨씬 작은 일본에 의해 유린을 당할 정도로 국력에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는데 지금의 상황은 전 세계의 제조공장이 다 몰려 와 있다고 하고, 게으르고 목욕 안 하는 되놈만 사는 줄 알았더니 실제 GDP 면에서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제2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하니 1978년 미국과 국교를 맺으면서 온통 뉴욕의 거리를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하는 홍색으로 바꾸고 축하를 하던 모습을 보았을 때 공산주의 체제의 중국이 설마 더 잘살게 될리 만무라는 생각에 다른 미국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전혀 예측을 못 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중국이 이렇게까지 발전하게 된 것은 정말 큰 충격이 아닐 수없다.
한국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하여 일인당 2만 달러라는 국민소득을 올리는 나라가 되었다는 보도를 보게 된다.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선다고 하니 한국인인 나에게는 이러한 소식은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다. 물론 소득수준과 삶의 질적인 면은 조금 다를 수가 있겠지만 결국 소득이 높아지게 되면 그에 따라서 국민과 기업이 내는 세금도 더 많아지게 되고 그에 따라 국가의 인프라도 더 좋아지게 되니 자연 삶의 질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마이카 시대를 맞게 되면 자동차를 가지고 달려야 하는 도로라는 인프라는 경제가 성장을 했다, 잘살게 되었다 하는 것을 아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바로미터가 될 법하다.
1978년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없이 부러웠던 미국의 고속도로망, 또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국도도 어찌나 잘 만들어 놓고 잘 관리를 하는지 차를 몰고 가 보면서 그 당시 상대적으로 열악한 도로망과 돈이 없다면서 형편없이 관리를 하여 자동차로 갈 만한 곳이 제한됐던 한국과 비교를 해 보면서 정말 미국이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되고 그런 미국이 한 없이 부러웠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이렇게 좋은 도로를 가진 이 나라에서 될 수 있으면 자동차를 몰고 가족이 함께 안가 본 미지의 도시들을 방문해 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역사가 2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니 사실 도시가 거의 다 같은 모양으로 획일적이어서 가 보고 실망도 하게 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중국은 5,000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여서 그간의 여행에서도 보면 정말 유구한 역사가 만들어 놓은 문화유산의 보고라 아니할 수 없으며 미국과는 달리 인류문명 발달과정의 여러면을 함께 볼 수가 있고, 넓은 대륙에 펼쳐져 있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광경들도 중국인들이 스스로 붙여 놓은 "山水甲天下"라는 글자의 뜻과 같이 중국에 있는 것 같다.
자동차여행을 쉽게 안전하게 하려면 여러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즉, 먼 길을 고장 없이 달릴 수 있는 자동차와 자동차가 달릴 때 요구하는 연료를 제공해 주는 일정 구간마다의 주유소, 또, 자동차가 갈 수 있는 안전한 도로망, 혹 고장이 나면 응급조치와 더불어 수리를 제공해 주는 곳도 있어야 하고, 여행하는 곳의 정확하면서도 자세한 지도는 물론 숙박과 음식, 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도 필요하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가는 곳마다 통신인프라가 갖추어져서 일반전화나 휴대전화기로 통화가 가능하여야 좋고, 요즈음 누구나가 사용하게 된 무선인터넷이 연결된다면 더욱 좋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일정을 짜면서 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위의 제반 조건이 갖추어져야 자동차여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겠기에 주변에 이를 확인하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순서로 쥰바룰 하여왔고 다시 준비된 것을 확인을 해 나갔다.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실제 자동차여행을 해 본 나는 그런 점검이 없이는 여행도 좋지만 자칫 무모한 여행이 되어 말레이시아에서처럼 사고라도 당하게 된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중국을 종단여행한다는 것은 중국이 발전하면서 계속하여 건설하여 놓은 도로와 통신이란 인프라를 직접 체험해 보게 되고, 또 아직도 약간의 불신이 있어 차를 구입할 때 여력만 있다면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한국산 자동차를 사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성장한 중국이라면 중국에서 만든 차를 타도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게끔 많이 쏟아져 나오는 가격면에서 외국 브랜드차에 비해 엄청나게 싸서 사게 되는 중국산 차도 직접 몰고 실험해 보게 되는 셈이고, 또, 옛날 같으면 지도와 이정표를 보고 가야 하겠지만 GPS라는 인공위성에서 받게 되는 위치확인정보를 통해 더욱더 편리한 여행이 가능하다고 하는 광고에서와같이 네비게이션(导航器 dao hang qi)을 구입한다면 이를 사용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게다가 무선인터넷이 중국 전역에서 된다고 하니 그것도 직접 사용이 가능하다면 중국 밖에 있는 지인들과 무선인터넷을 통해 여행을 하면서 느끼게 된 점도 실시간에 가깝게 전달할 수가 있을 것 같아 이것도 준비의 품목에 넣게 된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하루하루 정리하여 나와 함께 인터넷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나의 소식도 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가 보지 않은 곳을 여행했을 수도 있는 다른 여러분들의 중국 여행 경험도 들으면서 한편으론 성원과 격려도 받으면서 여행을 할 수가 있게 된다면 더 좋은 일이라서 내가 가입한 인터넷 클럽에 나의 여행계획을 알려 놓으니 나와 내 가족만의 여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셈도 되어서 서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것 같아 이번 여행을 통해 또 다른 보람도 느낄 수 있게 될 것 같다.
특히, 얼마 전에 개설한 건강한 중국 한민족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한 차이나 카페>에서는 <한 차이나 카페개설 기념 '자동차로 내달린 중국 대륙' >이라는 이름도 붙여 주고 격려를 해 주시며 클럽장과 회원 여러분 모두가 준비과정부터 함께 해 주시는 성원은 나에게는 큰 용기가 나도록 해주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한편, 내 개인적으로는 나의 모교가 내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게 된다. 만일 한국에 있었더라면 나의 동기생들과 함께 모교의 동문회에서 펼치는 다양한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했으련만 이렇게 중국에 살게 되니 그런 기회를 못 얻게 되어 아쉬웠는데 동문의 도움을 받아 혹 내가 방문하게 되는 도시에서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닌 선후배를 만나게 된다면 서로 모교설립 100주년 의의도 나눌 수가 있지 않을까 하여 단 한 명의 동문이라도 만나보게 되길 기대하면서 떠나려고 한다.
보르네오섬의 정글을 영국산 랜드로바로 여행하면서 보르네오섬에서 한국음식점을 하는 나의 13년 고교선배를 지나가던 길에 한국음식점이라는 팻말만 보고 들려 정말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었다. 서로 생면부지로 만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한국인이라는 것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다음엔 어디에서 자랐나 하는 것으로 대화가 진전되다 보니 결국 시간은 많이 차이가 나지만 같은 학교를 졸업하게 된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되어 한국이라는 고향을 떠나 외롭게 지내다가 서로 만나게 되니 친가족을 만나게 된 것 이상으로 반가와서 한참 손을 잡고 그간 지나온 이야기를 밤새 나눈 적도 있어서 그때의 그 감회가 혹 이번 여행에서도 끈끈한 선후배 관계를 자랑하는 나의 모교이기에 동문과 만나 이런 시간을 갖게 된다면 나에게는 더 없이 즐거운 추억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기대를 해 보게 된다.
또, 나만 자동차 여행의 의의를 찾지 말고 동행을 하는 나의 아내와 아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나와는 달리 중국인인 이들에게는 이번 여행으로 발전한 중국의 모습과 중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게 되어 더욱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또 아들의 말을 들어보면 중국은 큰 나라이다 보니 지방색도 있게 마련이고 지방마다 나름대로 형성된 그 지역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것 저것 많게 되는데 과연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실제로 맞는 것인지도 확인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은 자신이 가 본 일부 지역에서 경험한 것을 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특색이 존재하고 또 사람 각자마다 다 다른 것이 사실일진데 하물며 중국과 같이 큰 나라에 대해 자신의 짧은 경험에 의존하여 일부의 경험으로 전체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은 것 같다. 과연 한국인이 흔히 이야기하는 중국을 대표하는 그런 국민성이 정말 있는 걸까가 그래서 나에게는 의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더 다양한 지역의 중국인을 만나 보면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간 중국을 비행기로, 기차로 여행하면서 만났던 많은 중국인이 죽기 전까지는 적어도 중국의 7대 명승도시와 10대 산은 가 보고 세상을 떠나야 맞는 것이란 생각에서 여행을 떠나왔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경제적인 것을 너무 따진 나머지 여행을 즐길 줄 모르는 것 같은 중국인들에게도 이런 소원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와 결혼한 아내에게는 꼭 중국의 여러 지방 여행을 나와 함께 해 나가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의 자동차 여행을 통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이 지켜지게 되면 좋겠다. (중국 하얼빈에서 글쓴이 이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