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준(70회) 교우, 매경 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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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find.mk.co.kr/cgi-bin/read.cgi?전병준;2002;159254;"> 매일경제 2002.6.18.(화) 데스크 진단</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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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진단] 월드컵과 아시아時代
2002/06/17 17:06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남자 육상 200m 시상식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미국의 토니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손을 들어 불손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당시 미국 내부에서 자행되고 있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표시 였다.
이는 전세계에 미국 내 소수 인종의 부당한 처우를 알렸고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맞물려 미국 현대사의 치부를 들춰낸 이정표였다.
2년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9회 월드컵은 개도국에서의 첫 개최인 데다 대망의 70년대를 여는 빅 이벤트였다.
특히 예선에서 만난 전 대회 챔피언 잉글랜드와 '영원한 맹주' 브라질의 대결은 전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팽팽한 대결 속에 '뒤에도 눈이 달렸다'는 축구황제 펠레의 감각적인 패스를 떠오르는 슈퍼스타 자일징요가 강슛, 당대 최고 '신의 손' 고든 뱅크스를 뚫고 결승골을 날렸다.
이날의 승리는 점차 발언권을 높여가는 제3세계의 위상을 알리는 상징이 됐고 결국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대1로 물리치고 줄 리메컵을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
격동의 70년대를 뒤로 하고 82년 개최된 제12회 스페인 월드컵은 유럽의 변방국 스페인을 국제사회의 중심무대에 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 70년대 중반까지 40년이 넘는 프랑코의 철권통치로 인해 '인권의 사각지대'로 비난받던 스페인은 월드컵을 통해 새로운 유럽의 일원으로 편입됐고 이는 유럽통합의 원인(遠因)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신음 속에 또다시 멕시코에서 열린 13회 월드컵은 '중남미는 결코 죽지 않았다'는 절규를 반영하듯 축구 신동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가 우승컵을 거머쥔다.
이는 경제적 고 통에 시달리던 중남미 국가에 희망의 90년대를 기리는 징표로 간주됐다.
탈냉전의 분위기 속에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90년 월드컵의 주인공은 단연 서독이었다.
분단국가로서 마지막이었던 이 대회에서 서독은 전차군단의 조율사 마테우스를 내세워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74년 서독 대회에 이어 16년 만에 우승을 일궈낸다.
74년 우승이 동서독간 교류의 신호탄이었다면 90년 우승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자축하고 통일독일을 전세계에 알리는 메시지로 작용했다.
98년 유럽 통합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대회는 개최국 프랑스의 우승으로 통합유럽의 상징이 됐으며 유럽인의 긍지를 높였다.
이처럼 월드 컵은 시대와의 만남을 통해 희망과 비전을 인류에게 제시해왔다.
그렇다면 한ㆍ일 월드컵의 의미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양국 국민의 염원을 반영하듯 한ㆍ일 두 나라는 똑같이 2승1무의 예 선 전적으로 사상 처음 16강 대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우리도 놀랐고 세계도 경악하고 있다.
대회가 진행되면서 양측의 희비가 엇 갈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 대회의 의미는 축구 그 이상의 것이 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범아시아 협력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20세 기 전쟁과 가난에 시달려온 아시아는 21세기를 맞아 세계의 중심무대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표현처럼 아시아 국가들간 횡적인 유대관계는 기대에 못미쳐온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지나친 경쟁과 견제심리가 근저에 깔려 있었다.
이미 아시아는 세계경제사에서 압축성장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일본과 한국, 21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우뚝설 것으로 예견되는 중국 등 동북 3국을 축으로 지구촌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했다.
우선 이 3개 국이라도 진정한 협력 의지를 가져야 한다.
협력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작게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한ㆍ중ㆍ일 3국 프로리그 등 축구협력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과거 미ㆍ중간 핑퐁 외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포츠야말로 국가간 간극을 좁히는 가장 좋은 처방이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 시장이라는 큰 멍석을 깔아놓아야 선진 축구의 유입이 가 능하다.
크게는 아시아 국가간 상호협력 강화를 통해 21세기를 아시아 시대로 만든다는 원대한 구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협력은 물론 사회ㆍ문 화적으로도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
중국에서 불고 있는 소위 한류(韓流) 열풍도 이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월드컵을 통해 한ㆍ일 양국을 진동시키고 있는 붉은 악마의 함성이나 울트라 닛폰의 환호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대 를 준비하는 양국 국민들, 더 나아가 아시아인들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병준 bjjeo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