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자 동아일보기사] [시론]조희연/DJ아들 조사 자청하라
본문
[시론]조희연/DJ아들 조사 자청하라
권력형 비리사건의 몸통이 누구냐 하는 오랜 논란은 이제 대통령 아들들을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야당은 대통령 아들들을 대상으로 특검제를 실시하는 안을 16일 국회에 제출하려 하고 있다. 야당은 더 나아가 대통령도 조사해야 한다고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이 사건을 쟁점화하기 위한 규탄 장외집회까지 가졌다.
여당은 이에 대해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노풍’을 잠재우기 위한 무책임한 정치공세라고 반박하고 있다. 출국 전 김홍일씨를 둘러싼 논란에서부터, 이용호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김홍업씨의 연루의혹, 이른바 ‘최규선 의혹’ 사건에서 돈을 건네받은 것으로 전해진 김홍걸씨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의혹이 연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동안 각종 의혹사건에서 대통령의 처조카, 대통령의 막내처남, 대통령 아들의 동서 등 대통령 친인척의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친인척 비리 공화국’이라는 국민들의 탄식마저 나오고 있다.
▼對국민사과 뒤 진실 밝혀야▼
권력이 사유화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모습들이 왜 현실로 나타나는가. 대통령의 친인척을 감시하는 제도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런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인가. 현재 터져 나오는 각종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연루된 인사들의 개인적 비리로 치부하기보다는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과거 엄혹했던 야당 시절의 ‘인연’들을 여당 시절의 ‘인연’들로 아무런 단절 없이 고스란히 가져가면서 그것이 권력형 비리의 네트워크가 되었다는 것이다. 야당을 돕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시절에 형성된, 때로는 지연이나 학연에 기초한, ‘상부 상조적’ 관계들은 어려운 시절을 견디게 하는 여러 버팀목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 후 그러한 비제도적 네트워크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지속됨으로써 각종 게이트들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동일한 행위라도 정치적 위상이 달라졌음을 집권층은 깊이 성찰하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국민의 정부는 초기 강하게 요구되었던 ‘반부패의 도덕적 모럴’, 혹은 청렴한 권력윤리를 집권층 내부에서 세우는 데 실패했다. 자신이 야당 시절 정치자금에서 절대적 불이익을 당했던 전례를 생각해, 또 고비용 정치구조가 부패와 불가피하게 연루될 수 없다는 경험을 반성하면서 실체적으로 투명한 정치자금·깨끗한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 결단과 노력을 다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석이라도 아쉬운 나머지 집권 후 처음으로 실시된 서울 구로나 경기 광명의 보궐선거에서부터 여당이 오히려 돈 선거를 주도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50년 만의’ 야당 정부가 ‘50년 동안의’ 구여당 정부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 첫 단추를 명백히 잘못 끼우기 시작한 것이다. 재집권을 하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건 신정부에 바로 이런 반성과 성찰이 전수되어야 한다.
이런 원인 진단을 전제로 할 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된다. 먼저, 대통령 아들들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진실을 밝히고 조사를 자청하는 것이다. 침묵으로 이 상황을 피해가거나 대통령의 우산 아래에서 상황이 잠재워지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예외적 대우를 받는 것보다도 오히려 떳떳한 조사 자체가 남다른 행동이 될 수 있다.
▼직계가족 재산공개 필요▼
다음으로, 대통령 아들들을 포함한 직계 가족들의 재산공개 제도를 단행하는 것이다. 현재 공직자 윤리법에 따르면 부모의 부양을 받지 않는 직계 존비속은 고지거부권을 이용해 재산 내용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직계 존비속의 프라이버시권을 존중한다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부정하게 형성된 재산의 노출을 꺼리는 공직자들에게 은닉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각종 금품 수수 및 이권 개입과 관련된 의혹에 김홍업 김홍걸씨가 관련돼 있는 만큼, 이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재산공개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또한 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아들인 정연씨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독일 슈뢰더 총리의 동생처럼 대통령 친인척이 관광안내원을 하는 나라, 대통령 아들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근무하고 일체의 특혜를 거부하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척박한 현실에서는 과연 불가능한 것인지 자문해보게 된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