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66회 주진오(상명대 사학과 교수)의 글~한국일보 목요칼럼 , [아침을 열며] 日역사교과서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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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4월 4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66회 주진오교우의 글입니다.
주진오교우는 한국 근세사전공으로 학계에서 주목받고있는 학자입니다.
한국일보 해당 사이트로 직접가려면 아래 홈페쥐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www.hankooki.com/editorial/200204/h20020403184907e70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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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日역사교과서 올핸 다르게
주진오 상명대 사학과 교수
지난달 28~29일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역사인식과 동아시아평화 포럼’에 발표자로 다녀 왔다.
한·중·일의 학자, 교사와 시민운동가가 모여 군국주의 부활을 기도하는 일본 신 우익세력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를 중심으로 30명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앞으로 세 나라가 공동으로 역사 부교재를 제작하고 각국이 매년 돌아가면서 포럼을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또 며칠 내로 일본 신우익 세력들이 집필하여 메이세이사(明成社)에서 출판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 것이 확실하다는 보고를 듣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 회의였다고 생각한다.
[내주발표… 대책 마련 시급]
그런데 정부 당국자들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구성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이 위원회에서 역사인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리 없다는 것이 뻔히 내다보이는데도 연구 결과를 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다고 장담해 왔다.
더욱이 위원회를 구성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한 달이 다되어 가는 이시점에도 아직 위원 명단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1997년에도 양국 정상의 합의로 ‘한일 역사연구촉진 공동위원회’가 출범했고 ‘한일역사포럼’을 98년과 99년 양국에서 각각 한차례씩 가졌다.
그러나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고 그 후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개악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일 파트너쉽이란 명분(다테마에·建前)에 불과하고 그들의 본심(혼네·本音)은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왜곡이 단순히 역사 교육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선 한국 정부가 다음 주에 발표될 일본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다시 작년과 같이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뒤늦게 여론에 밀려 강경대응을 펴다가 슬그머니 후퇴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문제는 단순히 한일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이므로 중국, 북한과의 공조를 모색하여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처하는데 시민단체는 정부가 미온적이고 무능하다고 비난해 왔으며, 반대로 정부는 시민단체를 현실을 무시한 채 과격한 주장이나 펴는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서로 협조하여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가 시민단체의 운동을 일본과의 유리한 협상을 위한 카드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기 바란다.
[시민단체ㆍ정부 협조해야]
또 우리 언론과 국민은 일본 역사왜곡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흥분했다가 곧 잊어버리는 모습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가지 않으면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진정으로 시정되기를 바란다면 이미 전개되고 있는 운동에 돈으로든 시간으로든 실질적으로 참여하거나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한일간의 ‘2002 국민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인도 양국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역사인식 문제라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지나친 감정적 대응은 오히려 일본 국민이 교과서 문제를 외면하거나 신 우익세력에 기울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미움과 대결이 아닌 사랑과 평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