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 김광만, [윤봉길의 의사 처형장면 사진-자료 담긴 日극비문서철 최초발굴] 동아일보 4/11자 1면 특종으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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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회 김광만(金光萬)교우는 재학시절(1972~1974, 1975년 1월에 졸업)에는 당시의 학생잡지이던 '학원'등에 좋은 詩나 산문을 발표하여 문재를 보였고, 서울예대 재학중인 1978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詩부문에 당선하여 詩人으로 문단에 데뷰했읍니다.(해방이후 중앙교우로는 신춘문예에 최초로 당선이며, 신춘문예 100대 詩에 선정되어 있음)
그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방송가에도 회자되는 전문가입니다. 1995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회사인 "THE CHANNEL"를 설립,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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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사문 사이트주소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n=200204100224&main=1
다음은 동아일보 기사 내용입니다.(1면 사이트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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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0 17:42
윤봉길의사 순국장면 첫 공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1932)의사의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70주년(29일)을 앞두고 윤 의사가 1932년 12월 19일 일본에서 총살되는 장면을 담은 사진과 당시 상황을 기록한 극비 문서가 최초로 발굴됐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이 자료는 윤 의사가 처형된 이듬해인 1933년 일본 육군성이 작성한 윤 의사 처형 관련 극비 문서철인 ‘만밀대일기(滿密大日記)’에 수록돼 있다.
▼관련기사▼(3면)- 윤봉길의사 처형장면 사진 공개
이 극비 문서철엔 1932년 12월19일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미고우시(三小牛)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윤 의사가 총살당하기 직전 직후의 모습과 총살 장면 등 윤 의사의 마지막을 담은 사진 3장 및 처형장과 주변 상황도 등 도면 4장, 윤 의사 처형에 관한 각종 기밀보고서 등이 들어있다. 이 문서는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사인 더 채널의 김광만(金光萬·47) 대표가 지난달 일본 방위청 자료실에서 발굴해 10일 공개한 것이다.
그동안 윤 의사 관련 사진은 1932년 4월 29일 거사 후 체포되는 사진과 1946년 윤 의사 유해 발굴 사진 등만 공개됐다.
‘만밀대일기’엔 또 윤 의사의 처형 시간이 오전 7시40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동안 오전 11시40분인지 7시40분인지를 놓고 계속되어온 윤 의사 순국 시간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인하대 윤병석(尹炳奭·독립운동사) 명예교수는 “이번 사진자료는 윤 의사뿐만 아니라 독립투사들의 처형 순간을 담은 사진으로는 처음 공개된 것으로 그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 평가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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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3면 박스기사입니다]
2002/04/10 18:28
[윤봉길의사 처형장면 사진 공개]尹의사는 끝내 굽히지 않았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1932)의사의 처형 장면을 담은 사진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다. 윤 의사의 무릎을 꿇린 채 처형함으로써 일제가 윤 의사의 기개를 꺾으려했던 점, 총탄이 너무나도 정확히 윤 의사의 이마를 관통해 오히려 피가 별로 흐르지 않은 점 등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처연하게 만든다.
지난달 초 일본 방위청 자료실에서 ‘만밀대일기(滿密大日記)’에 실린 이 사진을 발견한 ‘더 채널’의 김광만(金光萬) 대표나 신운용 근현대사 팀장, 이 사진 사본을 전해 받은 유족이나 윤병석(尹炳奭) 인하대 명예교수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윤 의사 처형 장면을 담은 사진이 처음 발견된 데다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유족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동생인 윤남의(尹南儀·86)옹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사진으로 목격하니 참담하다”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윤옹은 이어 “총살한 뒤 윤 의사의 시신을 가네자와(金澤) 군인묘지 관리사무소 앞길에 묻어 13년 동안이나 방치했다는 것에 다시금 분노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조카인 윤주(尹洲)씨는 “이제야 이런 자료를 확인하다니, 그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탄식했다.
윤병석 교수는 “남의 나라 의사를 가마니에 무릎꿇게 하고 십자가에 묶은 뒤 미간 중앙에 총을 쏘는 잔인한 행위를 범했다니, 일본의 잔혹성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윤 의사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투사들의 처형 사진으로서도 처음 발굴된 것이다. 윤 교수는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죽었지만 이렇게 순국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기록은 처음이어서 윤 의사 순국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만밀대일기’는 윤 의사 처형과 관련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들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밀대일기’는 윤 의사 처형 이듬해인 1933년(쇼와 8년)에 일본 육군성이 작성한 극비보고서로 총 40여쪽이다. 윤 의사 처형사진과 처형장 도면을 비롯해 윤 의사 형 집행에 관한 각종 명령안, 소송 기록, 헌병사령관의 사형집행보고서, 백범 김구 선생을 추적한 밀정들의 보고서 등 윤 의사 처형과 관련된 자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자료들은 윤 의사 처형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윤 의사의 순국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이번 사료 발굴의 성과. 그동안엔 처형된 시간이 1932년12월19일 오전 11시40분인지 오전 7시40분인지를 놓고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만밀대일기’의 사협집행보고서에 오전 7시40분으로 기록돼 있다.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김달수(金達洙) 부회장은 “이번 자료를 통해 윤 의사의 정신을 다시금 되살리는 기회가 됐다”면서 “특히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한편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윤 의사의 거사 장소인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 공원의 매헌정에 이들 사진 사본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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