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르포] 남북정상 ‘공동어로수역’ 발표, 그 후
- 연평도·백령도 주민들
“우린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 서해상의 NLL(Northern Limit Line·북방한계선)과 관련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우리 어선은 NLL까지 다가가 조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래 5~9㎞에 설정된 ‘어로통제선’ 남쪽에서만 조업이 가능하다. 뭍에 군사분계선이 있고, 다시 그 밑에 남방한계선을 두어 그 안을 비무장지대로 정한 것과 비슷하다.
연평도·백령도 주민의 집중적 불만의 하나가 바로 이 어로통제수역에 관한 것이다. 당국이 우리 어선의 조업을 원천적으로 막는 틈을 타, 중국 어선들이 무더기로 몰려와 싹쓸이하고, 때로는 북한 어선들도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수역은 우리측 연안보다 훨씬 조황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평도에서 온 편지
지난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10개 항이 발표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서해5도 수역을 ‘공동어로수역’으로 정하고, 구체적 방안은 다음달 평양에서 남북 장관급들이 만나 협의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세부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NLL을 기준으로 남북이 같은 면적을 양보하자는 입장인 반면, 북측은 자기들만 NLL 남쪽으로 내려와 조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해교전 이후 우리는 해군의 통제로 NLL 근처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어장을 넓혀달라고 통사정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우리 바다에서 우리가 조업을 할 권리를 달라는 게 잘못일 수 없습니다. 만약 정부가 우리 어장을 넓혀주지 못한다면 우린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연평도에 꽃게를 비롯한 각종 어족이 풍부한 것은 NLL 덕도 있습니다. 물고기가 산란해 치어가 되고, 다시 어미가 되면 연평항과 해주항 쪽으로 갑니다. 그런데 해주항~한강을 잇는 물길을 내면 치어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치어는 보호 받지 못하고 산란 환경은 깨지고 맙니다. 어획량이 잠시 반짝 늘진 몰라도, 장기적으론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북한 배뿐 아니라 경기도·충청도의 큰 배들까지 공동어로수역에서 조업하게 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 ▲ 연평도에서 바라본 북한쪽 섬. 연평도 주민들은 이곳을 석도라고 부른다. / 조업을 준비하는 꽃게잡이 어선. / 한때 선주였다가 빚더미에 올라선 연평 어민 박태원씨. 그는 살길이 막막하다며 한숨만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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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되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면 아마 중국 배는 들어오지 못하겠죠. 남북한 해군이 경비를 설 테니까요. 하지만 발표문만 봐서는 이 구역에 누가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조업까지 결과적으로 묵인된다면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니까요.
지금 연평도는 한마디로 엉망입니다. 선주들은 빚더미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고, 어민들은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부수고 싸워 이혼한 가정이 늘었고, 젊은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잇달아 떠나고 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어른들만 다친 몸을 이끌고 막노동에 나섭니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요? 그동안 정부는 어디에 있었나요? 무엇 때문에 있는 건가요? 나랏일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부탁 드립니다. 안심하고, 조금 더 쉽게 먹고살 수 있게 해주세요. ▒
※연평도 최율 주민자치위원장, 김재식 어민회장, 안흥모 면장, 주민 김영식·유연숙씨, 어민 박태원씨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 연평도 = 이범진 기자 bomb@chosun.com
사진 =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ho@chosun.com
백령도에서 온 편지올해는 특이합니다. 꽃게가 7년 만에 풍어입니다. 큰형은 7t짜리 꽃게 어선 한 척을 갖고 있습니다. 나와는 나이 차가 스무 살이나 나는데, 매일 새벽 두무진항에서 바다로 나갑니다. 아침마다 속이 꽉 찬 꽃게를 걷어올릴 생각에 형이나 저나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30년 넘게 뱃일을 해 온 큰형의 요새 표정은 어둡기만 합니다.
이곳 NLL 근처는 소문난 황금어장입니다. 물고기들이 여기서 산란하고 자랍니다. 물이 차가운 편이라 고기 맛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NLL 근처에 못 갑니다. 저 멀리 보이는 우리 해군 함정이 레이더로 어선들을 지켜보다가 조금만 올라가도 어업지도선으로 경고 무선을 보내고, 어업지도선은 다시 우리에게 나가라고 재촉합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해병 출신이고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상 철조망인데 그 정도야 지켜야지요.
우리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지정된 수역에서만 작업합니다. 가끔씩 북한 함정이 NLL 근처에 나타나면, 우리 구역에서 정상 조업하는 모든 어선에 귀항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물도 걷지 못하고 돌아올 때마다 우리 심정은 정말 참담합니다.
- ▲ 꽃게잡이 어선에서 김태권(33·왼쪽)씨와 김석권(53)씨 형제가 꽃게를 걷어올리고 있다. 멀리 백령도가 보인다. / 백령도 두무진항에 정박 중인 꽃게잡이 어선들. / 백령도 곳곳에 생계대책을 마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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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수역을 중국 어선은 멋대로 휘젓고 다닙니다. 중국 어선 두 척이 한 쌍을 이뤄 북방한계선을 교묘하게 타면서 촘촘한 그물로 어장을 싹쓸이한 지 5년이 넘었습니다. 단속이 뜸한 야간엔 아예 남쪽 해상에서 조업합니다. 밤에 보면 마치 활주로처럼 불 밝힌 중국 어선들이 길게 늘어섭니다. 많을 때는 700척도 넘습니다. 우리는 중국 어선을 ‘해불’이라고 부릅니다. 바닷불이란 뜻인데 ‘해적’이란 뜻도 담은 겁니다.
백령도에 한번 와 보지도 않은 분들이 앞으로 여기를 ‘남북공동어로수역’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남과 북이 손잡고 중국 어선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생계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겠죠. 근데 저는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떤 배도 들어 갈 수 없는 군사지역인데도 관리가 안 되는데, 평화수역으로 바꾼다면 남북 어선이 뒤섞여 우글댈 텐데 어떻게 중국 배만 골라낼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북한이 중국 어선에 돈 받고 인공기를 팔 거라는 얘기도 벌써부터 들립니다.
큰형은 부쩍 말수도 줄었습니다. 매일 아침 바다로 나가지만, 정부가 정말 우릴 지켜주고 돈도 많이 벌게 해줄지 불안해 합니다.
※백령면 김예찬 면장, 연화3리 김석권(53) 이장, 김태권(33)씨의 이야기를 특정인의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