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계신 어느 한국 신부님의 일화
본문
제가 출장가서 알게 된 러시아(이르쿠츠크)에서
일생을 보내시며 봉사하시는 김도미니꼬 신부님께서 겪으신
감동적인 일화를 동문 제위와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참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이런 삶도 있군요.
괴로울때 위안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신다면 서로 돕고 사는 우리가 됩시다!
.........................................
"내일 엄마가 2ℓ의 피를 뽑고, 그 돈으로 빵을 살 거래요"
이곳은 어느 소설의 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10살 소녀에게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혹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고, 아이
에게 글로 써 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잘못 듣지 않았음을
아는 순간 '차라리 잘못 들었으면....'
알레샤는 내가 이르쿠츠크에서 언어 언수를 하면서 만난 10살
되는 러시아 소녀다. 언제 부턴가 성당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
러나 다른 아이들처럼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 외톨이
로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늘 성당에 오면, 미국인 페르난
도 신부를 찾곤 하였다.어느날 아이에게 100루블(1루블 40원,
1달러 29루블)의 거금을 준 이후 알레샤는 늘 페르난도 신부
를 만나고 싶어했다.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떠난 후, 언제 신
부님이 돌아오는지 묻기도 하고, 다른 외국 신부님들이나 수녀
님들에게 빵이 필요하다고 돈을 달라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근사한(?) 이유를 들곤 하였다.
하루는 나에게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오늘은 제 생일인데... 빵을 사줄 수 있어요." 들꽃으로 만
든 꽃을 주면서,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난 상당히 눈치가 빠르
고 약삭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전날 이미 다른 수녀님에
게서 어제 생일이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거짓말을 하는 것으
로 판단하곤 그냥 모른 체 하였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
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늘 어떤 그럴듯한 이유로, 때로는 금
방 들통이 나는 이야기로 빵이 필요하다고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만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알레샤를 만났을 때, 늘 하는 인사치레로,
"오늘 무엇을 했니?"
"할머니를 도와주었어요"
난 또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판단하곤, '이번에는 증거
를 잡아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못 하도록 해야지'라는 다짐
을 하면서,
"그 할머니 집을 알고 있니?"
"예. 저쪽에 살아요"
"그래, 그럼 그 할머니 집에 함께 갈 수 있니?"
"그럼요"
'잘 되었다. 싶어' 아이 뒤를 쫓아가면서 '집 앞에서는 이 집
이 아닌데...하곤 돌아서겠지'라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제
는 증거를 잡았다는 확신에 차 있었는데,
"할머니 저 알레샤에요"
아이는 집 앞에서 벨을 누르더니'어..뭔가 이상하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더니, 알레샤를 알아보
고는 '오늘 고마웠다'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늘 의심과
거짓말로 일삼았다고 알고 있던 나의 확신(?)에 '아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
게 되었다. 나의 선입견, 아이에 대한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늘 의심으로 아이에게 거리를 두고 지냈던 나에게,
'어린 아이처럼 천진할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초대로 집으로 들어가서는-사실 이것이 첫 러시아
가정에 가 본 첫 경험이 되었다.- 차를 마시면서, 할머니는 아
이가 기차역에서 힘들어하던 나를 부축해서는 차를 태워주었다
는 말을 전하면서, 참으로 착한 아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할머니의 집을 나섰을 때, 이미 해가 서산으로 넘었기에, 집
에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나의 제의에 아이는 쾌히 승낙을 하
는 것이었다. 이미 이전에 내가 어머니를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는 늘, 엄마가 일 나가서 안 계시다고 하던 아이의 입
에서 나온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대화를 나눈 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아이를 믿지 않았고, 또 그런 나의 모습에 아이역
시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이후, 난 알레샤와 일주일에 2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만나
면 고, 또래 아이와 함께 수녀원을 방문하고 함께 하루를 지내
기도 하며, 로사리오 기도를 함께 바치기도 했다. 또 바이칼
호수에 가서 산책하고, 돌을 함께 호수에 던지면서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내곤 하였다. 내가 아이를 믿고 신뢰를 가지고 대
할 때마다, 아이 역시 나에 대한 신뢰와 함께 작은 변화가 일
어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신뢰와 사랑'으로 맺어지
는 변화였다. 아이는 그 이후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
못인가 를 알게 되었고, 나 역시 잘못된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
단하고, '변화되지 않을 거야'라고 단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
고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되는 계기였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
서 이끄시고 나는 단지 그 뜻을 쫓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알레샤를 만난 이후로, 아이의 삶의 배경 뒤에 있는 러
시아의 영세민 세계를 조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가정처럼,-러시아의 가정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이
것은 러시아의 남자와 여자의 비율에서 남자가 모자라는 이유
이기도 하다- 엄마의 나이 20세에 알레샤를 낳았고, 아빠에 대
한 존재와 기억은 아이에게는 없다. 오늘 엄마가 30세가 되는
날이다. 그러나 마치 50세 중반의 노년기에 접어든 듯한 외모
에서 가난의 무게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해준다. 일주일에 1
번 라디오 조립공에서 일하고, 나머지 날에는 하루 3시간 정
도 구멍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것이 전부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말 그대로 영세민 중에서도
영세민이다. 방은 폭3m에 길이가 약 7m 정도 되는데, 방에는
침대 2개와 작은 책꽃이와 책상이 전부이다. 화장실과 샤워실
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작은 전기 곤로 한
개가 전부다. 물론 손바닥 만한 텔레비전이 있기는 하다.
난, 아이의 집을 방문하고서야 알레샤가 빵을 사달라고 했을
때 의 나의 무관심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알레샤가 학교 다
닐 때는 하루에 2번 식사를 한다. 그것도 학교에서 영세민들에
게 배급되는 아침 겸 중식으로 그리고 수업이 마칠 때, 배식으
로 하루를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학교는 3개월 간의
긴 방학으로 접어들었다. 집에서 빵 한 덩어리로 해결하고 있
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산책을 끝날 때마다, 러시아 빵(6루블), 우유(12
루블) 2개, 마카로니 2kg, 설탕1kg 그리고 간혹 초콜렛과 아이
스크림을 사주곤 한다. 러시아 돈으로 약 100루블 정도다.그런
데 아이에게 이것을 살 줄 때마다, 아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
는 듯, 이렇게 많은 음식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해 놀라곤 한
다. 100루블이면, 한국 돈으로 4000원 정도요. 달러로 3불이
조금 넘는 돈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주 큰 돈이다. 아이
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빵은 아이와 엄마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굶주
린 오천명에게 말씀을 나누실 때, 빵과 물고기를 주었듯이...
오늘 아이의 엄마 생일이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아이는 나
를 초대한다고 하였다. 물론 아무 음식도 준비되지 않은 초대
이다. 그 이유에 대해 아이가 설명하는 과정에서 난 그만 깜
짝 놀라고 말은 것이다.
"내일 엄마가 2ℓ의 피를 뽑고, 그 돈으로 빵을 살 거래요"
마치 어느 소설에서 읽었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것이 이제는 어느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접하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의 한 장면에서 접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난 혹시나 해서 러
시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런 일
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러시아에서는
헌혈이라는 개념이 없고, 또한 가난한 이들은 피를 팔아서 100
루블을 벌어야 하는 현실.
이것이 또 다른 러시아의 뒤 모습이다.
러시아의 자유화에 대한 개방과 함께,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
는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난한 이들의 소외됨과 빵을 사
기 위해 피를 뽑아야 하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
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있어
서 배고픔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
오늘, 영리한 아이인 알레샤는 엄마 생일을 위해 내가 당연
히 선물을 사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난 아이의 기대에 벗어
나지 않기 위해- 모른척하고- 시내로 가서 먼저 아이에게 햄버
거와 콜라 그리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준 후, 100 루블하
는 아주 근사한 케익을 사서, 알레샤의 엄마 생일을 축하해 주
었다.
생일 잔치(?)를 하고 떠나는 나를 향해 고맙다고 말하는 그들
의 모습에서, 100루블 하는 케잌을 먹고, 다시 피를 뽑아 100
루블을 벌어야 할 알레샤 엄마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주님 소외되고,가난한 이들에게 당신 친히 자비를 베푸소서!"
* 위의 글에서 사람이 한번에 2ℓ의 피를 뽑으면 살수 없다.
이것은 단지 아이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인지 정확히 알지 못함은 사실이다. 또한 이 부분에 관해 러시
아 사람(나의 러시아 선생님)에게 물어보았을 때, 200㎖ 정도
피를 뽑는다고 한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런 일들을 돈이 필
요로 하는 학생들이나,가난한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피를 필요로 하는 병원의 요청이기도 하지만,아직 헌혈
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족으로 기인된 것이기도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