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기사-취임 100일 조환익(60회) 수출보험公 사장
본문
<경제인 산책> “상품 수출 넘어‘금융 수출’로 국부 창출해야” |
취임 100일 조환익 수출보험公 사장 |
박양수기자 yspark@munhwa.com |
지난 3월 현대중공업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프랑스 시뎀(SIDEM) 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우디아라비아 전력회사인 마라피크(MARAFIQ)가 발주한 총 34억달러 규모의 발전·담수설비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현대중공업 컨소시엄은 프로젝트 추진자금 중 20억달러를 BNP파리바은행 등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키로 했다. 그런데 BNP파리바은행은 국내기업 수출분인 13억달러에 대한 보증을 한국수출보험공사에 요구했고, 공사측은 이 가운데 9억달러를 17년간 지급 보증해주는 중장기 수출보험 형태로 지원키로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상품을 수출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환율하락 등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서도 한국수출이 19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하며 한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수출의 ‘숨은 주역’이 있다. 한국수출보험공사가 그곳이다. 수출보험공사 사장 취임 100일을 맞은 조환익(57) 사장을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공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취임 100일을 맞는 소감을 슬쩍 묻자 그는 “시대적 사명에 딱 맞는 자리에 온 것 같아 보람을 느끼는 동시에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출보험공사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요즘 수출은 꾸준히 늘어나지만 언제까지 계속 두 자릿수 수출증가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기업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수출비중이 갈수록 줄고 수출채산성이 줄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원자재가 변동, 환율문제, 해외시장 개척 등 수출 중소기업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안전판 역할을 공사가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대기업과 금융기업들이 해외시장에 제품과 금융상품으로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조 사장은 그런 의미에서 국내 금융업체들이 이제 좁은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무역투자보험 중심으로 역할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수출호조 등으로 축적된 시중 유동자금을 산업자본화해서 해외투자나 자원개발 등에 투자함으로써 국부창출과 수출확대를 도모하는 ‘돈 수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수출이 후발개도국의 추격과 선진국의 따돌림으로 한계에 부닥친 상황에서 국내 유동자금을 해외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자본수출’이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 시장은 상품 수출시장을 능가하는 고수익 산업으로 현재 시장 대부분을 해외 선진 금융기관이 선점하고 있다”며 “금융수출을 통한 해외진출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한 우리 금융기관들에 해외프로젝트 금융제공 기회를 적극 주선하겠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 수출을 해도 수익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돌파구를 금융수출로 뚫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배 한 척을 만들어 수출하면 제조업체가 배값의 6~7%에 해당하는 돈을 벌지만 선박업체에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그보다 6배나 되는 이자소득을 올립니다. 가령 1억달러짜리 배 한 척을 건조하면 조선업체에 600만~700만달러의 영업이익이 떨어지지만, 선주에게 돈을 빌려주는 외국은행은 3500만달러가량을 12년간에 걸쳐 분할 상환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고수익의 해외 수출금융시장은 대부분 선진국 은행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아픈 현실이다. “씨티은행 한 곳만 하더라도 해외 점포가 9000개나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들의 해외 주재 점포를 모두 합해봐야 겨우 114개(2007년 8월 기준)에 불과하죠. 국내 상업은행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전체 수입의 3%도 되지 않지만 선진국 은행들의 경우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총수입의 50~90%를 차지해요. 해외의 부를 전부 장악하고 있는 셈입니다.” 공사는 지난해 도입한 해외사업금융보험과 자원개발펀드보험 등의 지원을 통해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해외 프로젝트 투자기회를 적극 주선하고, 이때 발생하는 투자금 미회수 위험을 담보하면서 ‘돈 수출’ 활성화를 주도할 계획이다. 그는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출 생태계의 질적 발전을 위해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공익적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사는 다양한 전용보험제도 도입과 우대혜택 실시를 통해 중소기업 리스크 제로에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공사는 지난 5월 가입기준을 대폭 완화한 보험을 출시하는 한편 단기수출보험을 통한 중소기업 위험담보비율도 97.5%에서 100%로 확대했다. 또 급격한 원자재 가격 변동으로 수출기업이 보는 피해액을 보상하는 ‘원자재가격변동보험’을 출시하고 수출대금 미회수 위험, 환변동 위험, 신용장하자위험 등 수출 전 분야의 위험을 하나로 예방할 수 있는 ‘중소기업 종합보험’을 도입할 예정이다. 수출보험공사 사장이 바라보는 2007년 9월의 한국경제 모습을 어떨까. 그에게 솔직한 평가를 부탁했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는 “이제 경제의 모든 면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며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활성화가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금융산업이 시대적 변화(트렌드)에 적극 맞춰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컨대 코카콜라만 하더라도 웰빙 추세에 밀려 국내시장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반면 까만콩 음료 등이 급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자동차 산업에서도 지금은 젊은층 위주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이 잘 팔리고 있지만 고령화로 인해 조만간 크고 편안한 차가 더 많이 팔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금융상품도 단기 고수익상품이 수년 후에는 노인층에서 선호하는 장기 안정상품으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조 사장은 상공부 시절부터 거의 통상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온 ‘통상맨’이다. 그는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의 곳간이 비었을 때 밤잠까지 잊어가며 뛰어다니던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목표는 250억달러 무역흑자에 외국인 투자유치 150억달러였다. 국가 신용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그는 이 목표를 달성하느라 갖은 일을 다했다. 외국기업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세금애로, 환경규제 등 애로점을 묻고 다녔고, 외환 환가 수수료와 항만 운임료를 낮추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그 결과 150억달러 외자유치라는 사상 유례없는 대기록을 이룰 수 있었다. 인생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좌우명을 물어보니 주저없이 김구 선생의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을 꼽았다. “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는 선배, 동료,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이며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 속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조환익 사장은 누구 조환익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의 집무실에는 특이한 물건이 하나 있다. ‘상공부 아주통상과장 대리’라는 직함을 지우고 ‘상공부 통상총괄과 행정사무관’이라고 쓴 명함이 들어있는 액자다. 그 사연이 재미있다. 행시 14회인 조 사장은 1983년 상공부 통상총괄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다가 공석이 된 과장 대리로 한동안 근무했다. 얼마 뒤 당시 금진호 차관이 그를 과장으로 승진시키려 하자, 행시 12회내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조 사장은 “동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며 승진을 고사했다. 이런 일이 두 차례 반복되자 금 차관이 그를 불러 “그럴거라면 나 있는 동안엔 과장할 생각마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그 시절 명함을 20년 넘게 간직했던 모 인사가 얼마전 액자에 담아 보내왔다고 한다. 지난 2001년에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산자부 차관보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 관가에서 ‘아름다운 퇴장’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50년생 ▲서울대 정치학과·뉴욕대 경영학 석사·한양대 경영학 박사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주미대사관 상무관 ▲통상산업부 공보관 ▲산업자원부 차관보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산업자원부 차관 인터뷰= 박양수 경제산업부기자 yspark@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