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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겨울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이 오랫 동안 선수생활을 했던 독일 레버쿠젠에 취재 갔을 때 구단관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 차붐이 선수생활 막바지엔 경기에 별로 출전하지 못 했는데 팀에서 그를 데리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
아주 먼 옛날 이야기지만 그의 대답은 지금까지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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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30대 후반의 차붐은 예전 같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겐 경기에 못 뛰어도 팀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는 매사에 성실했고 솔선수범했다. 훈련할 때는 항상 맨 앞에서 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은 차붐의 성실성을 배우게 된다. 차붐은 보이지 않게 팀의 정신적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 그의 가치는 충분했던 것이다 " .
차 감독의 선수시절에 관해 읽고, 들은 숱한 일화들은 대부분 그의 근성과 성실성을 대변해 주는 것들이다.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경신고 시절 은사이던 고 장운수 전 대우 감독이 차붐을 찾았다. 당초 저녁 6시에 차 감독의 집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처음 가는 길인지라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 여 늦게 도착했다.
장 감독은 사랑하는 제자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자 마자 차 감독은 " 선생님, 내일 훈련 스케줄이 있어 먼저 자겠습니다 " 며 침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장 감독은 실망이 컸지만 자기 관리에 충실한 제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독일까지 그를 취재하러 온 한 한국 기자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길이 막히자 차붐은 " 훈련시간이 됐다. 미안하다 " 며 그를 고속도로 한가운데 내려놓고 가더라는 것이다. 언어 소통도 안되고 지리마저 생소한 그 낯선 땅에서 그 기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러나 그런 것이 차붐을 성공으로 이끈 동력이었다. 두 일화 모두 한국인의 정서에 좀 맞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은 바로 그의 근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 차 감독은 부인 오은미 씨와 연애를 하다가도 자기가 정한 훈련시간만 되면 혼자서 줄넘기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도자로서는 아직 평가하기 어렵지만, 선수로서 차붐은 자기관리에 가장 철저했던 스타였다.
근성과 집념이 없다면 모든 일에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 축구란 다른 일들과는 달리 우연이 작용하는 종목이 절대 아니고, 오직 자기관리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자기앞 수표'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전남의 허정무 감독이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아시아 최고의 스타였던 김주성(현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 2002년까지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의 홍명보 역시 근성으로 똘똘 뭉친 스타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스타들을 보면 그런 근성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미 고교 때부터 대형스타로 주목 받던 이동국(미들스브러)은 사실 19세이던 1998년 월드컵 네덜란드전서 0-5로 뒤지고 있을 때 교체 투입돼 중거리 슛하나 날리고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다. 월드컵 참패의 분위기에서 '한국축구를 살려 보자'는 언론의 집착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정작 그는 기대대로 커 주지 않았다.
91년 청주상고 3연패의 주역 전경준, 청소년과 올림픽 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 최용수, 윤정환, '게으른 천재' 고종수 등 재질면에서 가능성을 인정 받았던 많은 예비스타들 역시 잠시 반짝이다 스러진 별들이다.
최근 아시안컵에선 많은 선수들이 차세대 기대주로 떠올랐다. 또 올림픽대표팀에서 주목 받는 어린 예비스타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지켜보면서 뭔가 이들에게 빠진 게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이들에게 김주성이 들려주었던 일화를 하나 전해주고 싶다.
" 중앙고 1학년 때만 해도 나는 아주 작았어요. 그래서 근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매일 새벽 학교 앞 60계단을 두 시간 이상 오르내리며 뛰었지요. 그 훈련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빼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 .
OSEN 스포츠팀 부장 usk0503@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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