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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아프간 인질사태와 정부 대응
입력: 2007년 07월 30일 18:01:30
〈이승철 논설의원〉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가 벌어진 이후 정부의 움직임이 무척 활발하다. 사건 발생 직후 조중표 외교통상부 제1차관이 현지로 파견된 데 이어,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이 대통령 특사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면담했다. 또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로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가 고위 인사들을 앞세워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에 납치된 피랍자 22명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 불편해 하는 목소리가 관련 국에서 흘러나온다. 왜 그럴까. 정부의 노력이 인질협상에 불충분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질구출협상은 협상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들다. 인질협상은 생명, 특히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두고 벌이는 협상이라는 점에서 아무리 뛰어난 협상전문가라도 이에 부담을 느낀다. 하물며 피랍자들의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상태에서 벌이는 협상은 일러 무엇하겠는가. 이번 사태는 가장 고난도의 협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우리는 협상의 주체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이긴 하지만 협상에서는 제3자라는 점에서 활동 범위에 제한을 받고 있다.
-차분한 대응 기본원칙 지켜야-
그렇지만 인질사태에 대응하는 기본원칙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인질협상 전략을 연구한 미국의 자유기고가 에드 그러비아노프스키는 ‘인질협상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글에서 협상의 최우선 사항으로 납치자에 대한 정보수집을 꼽았다. 협상에 나서는 사람은 납치자의 정체, 요구조건을 파악하는 한편 이들의 습관, 태도, 반응에서 심리적 프로파일(profile)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협상 주체는 상황을 지연시킬 것과 모든 것을 조용하게 유지할 것, 납치자와의 관계를 긴밀히 할 것을 그는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협상무대의 전면에 나섰다. 외교차관이 현지로 날아가 지금까지 진을 치고 있고, 대통령 특사가 공개적으로 파견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게 피랍자와 탈레반 포로의 맞교환을 요청했다. 고위인사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정통하고 연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한·미 외교장관간의 전화 통화 사실도 정부 스스로 밝혔다.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정부가 인질협상의 기본 원칙인 차분함을 지키지 않고 홍보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상황이 좋게 끝나면 좋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정부가 노력을 했다는 사실로 면피하려는 계산이 아니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심지어 정부가 석방 협상보다는 국내 여론을 더 의식해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이 외교부 주변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부는 이제라도 인질석방 협상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듯하다. 당장 중요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에 머물고 있는 고위 인사들보다는 현지 전문가들을 파견해 다양한 접촉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고위 인사들이 움직이더라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끄러워 가지고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모두에 압박으로만 느껴질 수 있다. 또 요란한 움직임은 탈레반의 기대 수준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이슬람 전문가 양성 시급-
아프간 인질사태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을 따져보면 우리의 파병과 관련지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 국민의 대외 활동이 많아지면서 이 같은 사태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는 물론 인질사태를 보는 우리 국민의 의식도 한 단계 성숙해야 겠다.
또 이번 사태에서 세계 최대 현안인 중동문제, 이슬람에 대한 전문가 부족 문제가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 외교관들은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중동문제나 이슬람문제를 담당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외교부 중동국장이 대부분 아랍세계나 이슬람 전문가가 아닌 사람으로 채워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중동문제 전문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역 전문가를 시급히 키워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