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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29회 작성일 1970-01-01 09:00
[펌글]東亞여, 사랑했던 東亞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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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yber기자단 66회 박정관입니다. 제가 고교 3학년이던 1974년 10월과 대학1학년이던 1975년은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바른 말도 주위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하지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던 암울한 시기였죠. 그래도 우리 중앙인들이 어깨를 활짝 펼 수 있었던 여러가지 요소중에 '동아일보'라는 존재가 우리 가까이에 있었던 이유도 분명히 포함되었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게 하는 글이 있어 옮겨옵니다. <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글제목 : 東亞여, 사랑했던 東亞여… 75년 백지광고사태 때 격려광고를 실었던 여대생 독자가 말한다 사진/ 정강자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박승화 기자) 나는 <동아일보> 애독자가 아니다. 단지 <동아일보>가 내 주위를 맴돌며 다가서기도 하고 때론 돌아서기도 하는 여러 모습을 오랜 세월 지켜보았을 뿐이다. 나는 밤에는 라디오 연속극에 취하고 해가 뜨면 밥상머리에서 <동아일보>를 펴들고 혀를 차거나 고개를 끄덕이시던 아버지로부터 <동아일보>를 간접구독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친구와 그 내용을 속삭인 것은 여고 3학년 때부터였다. 우리의 속삭임은 위수령 발표와 도서관에서 운동장으로 끌려나온 고려대 학생들에 대한 기사에서 시작됐다. 북한산 입구에서 팔았던 ‘동아 커피’ 그뒤 유신체제 아래서 보낸 대학생활은 끊임없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나는 긴급조치 1호에서 4호에 이르는 동안 터져나온 크고 작은 소식들을 전달받는 매체로 주저없이 <동아일보>를 택했고, 사회의식과 감수성 개발의 일정부분을 <동아일보>에 맡기며 지냈다. 1974년 <동아일보>는 살벌했다. 언론을 정치권력 아래 묶어두려는 박정희 정권과, 기업으로 살아남고자 했던 회사, 그리고 권력과 사주의 압력에 저항하는 동아기자들. 이 삼각구도는 박 정권의 광고탄압, 회사쪽의 대량해고,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우리 앞에 진실을 드러냈다. 정권이 광고주에 압력을 넣어 백지광고가 나오고, 백지광고의 넓이만큼 국민들의 ‘동아사랑’은 커졌다. 수만 가지 사연이 동아살리기 격려광고란을 메워갔다. 이대로 조금만 더 버텨주면 되리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자유언론실천운동에 대한 지지에는 74∼75년의 암울했던 사회분위기를 혁파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얹혀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몇몇이 모여 논의한 끝에 격려광고를 내기로 했다. 광고비는 커피를 팔아 충당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북한산 입구에 터를 잡고 좌판을 벌였다. 휴대용 가스버너에 물을 끓여 만든 어설픈 커피였지만, 차가운 대기에 퍼지는 커피향만은 기가 막혔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등산객을 수도 없이 흘려보내길 얼마나 했을까. 우리는 광고비를 많이 벌어보겠다는 욕심을 접었다. 대신 조금은 겁이 났지만 ‘동아커피’라고 쓰인 즉석 종이간판을 나뭇가지에 내걸고 모두 달려나가 사람들에게 커피 파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돈이 들어왔다. 커피값을 주고받는 동안 교차되던 가슴 벅찬 눈길과 미소. 우리는 ‘공범자’였다. 며칠 뒤 우리는 ‘동아를 사랑한다. 북한산에서 의기투합했던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내용으로 광고를 냈고, 같은 날 이대생들이 커피를 팔아 격려광고를 냈다는 기사도 함께 실렸다. 메달도 받았다. 우리는 감격했다. 봄이 왔다. 어느날 아침 친구를 찾아 학보사에 들렀는데 ‘<동아일보> 기자들이 새벽에 광화문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후배들과 함께 회사 밖으로 내몰린 이들이 모여 있다는 종로5가 기독교회관을 찾았다. 현장이 아닌 농성장에서 보는 기자아저씨들의 어두운 표정과 누더기 같은 낡은 퀼트이불을 보자 말문이 콱 막혀버렸다. 무어라 위로와 지지를 표해야 했는데 그저 진땀만 났다. 이때 부러진 안경다리를 반창고로 동여매 쓰고 있던 아저씨(그는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이었다)가 도리어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놀란 우리를 환영해줬다. 그 메달에 새겨진 글귀가 안쓰럽구나 광고탄압 사태가 그저 사태로 끝나고 <동아일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신문을 척척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동아메달을 모두 모아 누런 건물을 향해 내던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장롱 밑바닥에 넣어뒀던 메달에는 ‘언론자유 수호격려, 1975, 감사합니다. 동아일보·동아방송’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2001년 지금, 나는 이 글귀가 안쓰럽다. 사회에 나와 오랫동안 운동단체에서 일해오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 나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우리 조직이 지켜야 할 기풍은 무엇인가 생각하곤 한다. 이것은 성장기의 내게 동아가 기사에서, 행간에서 남몰래 가르쳐준 버릇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이 질문을 <동아일보> 기자들에게 드리고 싶다. 내가 보아온 <동아일보>에는 우리가 바라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있다. 나는 그 기풍이 아직 깊숙한 곳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아! 확실히 난 <동아일보>의 애독자였나보다. 정강자/ 여성민우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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