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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6·10만세 100주년을 앞두고
‘6·10 독립만세운동 선창터’ ‘송학선 의사 의거터’. 서울 종로3가 단성사 건너편과 창덕궁 금호문 앞에 세워진 표지석의 제목들이다. 과연 우리 국민 가운데 이 표지석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바로 옆을 지나는 사람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는 6·10만세운동 100주년을 한 달여 앞둔 지난 2일 역사 현장을 답사했다. 참가자들은 중앙고등학교를 출발해 창덕궁 금호문~단성사 앞~장사동 52~관수교~종로2가 신간회 본부 터~탑골공원 경로로 약 3시간40분 동안 걸었다. 답사는 박찬승 기념사업회 회장(한양대 명예교수)이 이끌었다. 지난해 가을 진행된 첫 답사에서는 단성사에서 일정을 마쳤지만, 올해는 이후 동선까지 추가해 코스를 확대했다.
1926년 6월 융희황제(순종) 장례식을 계기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중앙고 교정에는 ‘6·10만세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금호문은 송학선 의사가 4월28일 사이토 마코토 일제 총독을 처단하려 했던 현장이다. 또 단성사 앞은 중앙고보 5년생이던 이선호가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쳤던 장소다. 장사동 52는 6·10만세운동을 처음 기획했던 권오설이 체포된 곳이며, 관수교 일대는 연희전문 등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벌였던 장소이다.
금호문을 통해 창덕궁 안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금호문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송학선 의사 표지석’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일까. 대로변에 놓인 ‘선창터 표지석’은 더 처참했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표지석은 찾기조차 힘들었다. 한 노점상이 내놓은 플라스틱 의자에 가려진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답사가 우리 망각 속에 있는 6·10만세운동의 현주소를 제대로 확인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6·10만세운동은 3·1운동, 광주학생운동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독립운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학술적 연구 역시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6·10만세운동은 이념을 뛰어넘어 민족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세력의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이듬해 초 신간회 출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만주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유일당 운동에도 큰 힘이 되었다.
기념사업회는 2019년 3월 정식 발족한 이후 ‘잊힌 존재’인 6·10만세운동을 복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국가기념일 지정을 이끌어냈고, 지금까지 학술 심포지엄 7차례 개최와 사료집 4권, 교양서 1권 발간 등 다양한 기념·연구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기념식, 기념 우표 발행 등 정부 행사와 별도로 국제심포지엄(6월5일), 진혼음악회(6월9일), 기념비 제막식(6월10일), 100주년 기념논문집 발간(12월 말) 등 다양한 기념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답사에 참여한 인원이 지난해보다 늘어 40명에 가까워졌고, 연령층도 한층 다양해졌다는 점은 작지만 의미 있는 위안으로 다가왔다. 6·10만세운동 100주년이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분열을 치유하는 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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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6·10만세기념사업회 부회장


